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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poke Wallpaper Music _ Young Eun Keem NOT YET RATED

맞춤 벽지 음악 _ 김영은

2014.9.18 - 25 7PM
솔로몬빌딩 + 케이크 갤러리
Solomon Building + Cake Gallery

김영은 공연
2014.9.18 – 2014.9.25 7PM
서울시 중구 황학동59 솔로몬빌딩 + 케이크 갤러리

김영은 작가는 [맞춤 벽지 음악]에서 소리와 공간에 관한 세 점의 연주를 솔로몬 빌딩의 1층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6층에서 선보인다. 솔로몬 빌딩은 그 건축적 성격이 독특하다. 부채꼴 모양의 건물은 총 여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마다 작은 방들이 켜켜이 있어서 마치 방 너머에 다른 방이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이 공연은 이렇게 숨겨진 공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벽 너머의 작은 방들, 건물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베란다, 마지막으로 숨어버리는 공간으로서의 엘리베이터가 그것들이다.
연주자들은 서로 보거나 닿을 수 없는 공간에 몸을 숨기고, 들릴 듯 말 듯한 다른 연주자의 소리와 지휘자의 원격신호에 맞추어 자신의 연주를 이어가게 된다. 관객들 또한 연주자를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데, 오로지 소리로만 그들의 위치를 추적하거나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상상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복합적으로 중첩되는 다양한 소리-공간들이 생성되는데, 그것은 연주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소리-공간의 레이어와 연주자들과 관객들 사이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공간의 소리, 그리고 서로 다른 상상과 해석을 내놓을 관객들의 머릿속의 소리-공간들이다.

소리, 그리고 공간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리라는 맥락에서 이 둘을 달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연적으로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리란 일종의 공기의 흐름이자 반향이며 진동이므로, 공기를 이곳 저곳으로 흐르게 하고 부딪혀 돌아서게 하는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은 청각적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사실 소리와 청각적 경험은 언제나 공간의 문제를 수반한다. 따라서 관객에게 소리와 공간에 관한 연주를 들려준다는 것은 우리가 항상 듣고는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소리-공간을 감각의 수준으로 가져오고자 하는 것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느 순간에나 감지되는 것으로서 소리를 이야기할 때의 ‘듣기’는 능동적인 ‘청취’라기보다는 수동적인 ‘듣기’에 머무른다. 하지만 일단 청취를 염두에 두고 능동적인 듣기를 시작하면, 꽤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테면, 공간마다 고유한 어떤 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공간이 갖는 고유한 주파수가 미세하게 달라서 각각의 공간마다 어떠한 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은 1층 벽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교묘하게 다른 음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분명 같은 층의 같은 벽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방이지만, 똑같이 벽을 두드리게 되더라도 각 공간이 저마다 갖는 주파수 때문에 높고 낮은 어떤 화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주지했듯이, 소리는 흐름이자 진동, 그리고 반향이다. 따라서 소리는 그 되돌아오는 성질에 의해 종종 에코로 이야기된다. 에코는 소리의 발원지로부터 즉각적으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타고 흐르다가 어느 공간에 부딪혀 반사되어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적인 거리감에서 파생되는 시간성까지도 내재한다. 반사와 반복의 성질을 띠는 소리 덕분에 소리-공간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소리-공간은 자연스럽게 소리-시간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앨빈 루시에(Alvin Lucier, 1931~)는 1970년 <나는 방 안에 앉아 있습니다. I am sitting in a room.>라는 작품을 시연한 바 있다. 이 작품은 한 방에서 여러 번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먼저 작가의 육성으로 녹음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녹음한다.
“나는 당신이 지금 있는 그곳과는 다른 방에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있는 목소리의 음향을 녹음하고 있고 나는 이 소리를 반복하여 재생해서 결국에는 방의 공진주파수*들이 스스로 강해질 것이고, 나의 말소리의 모든 특징 중에서 아마도 리듬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목소리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이 방의 자연적인 공진주파수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어떤 물리적 사실을 보여주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말소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불규칙성을 제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녹음된 목소리를 재생시키고 다른 녹음기로 녹음된 목소리를 다시 녹음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녹음된 목소리를 또다시 녹음한다. 이 과정을 그는 서른 번도 넘게 반복했다. 이 작업의 결과는 루시에가 녹음한 텍스트의 내용과 일치한다. 즉, 녹음된 목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녹음하는 과정에서 공간에 부딪혀 돌아오는 소리의 반향들이 테이프 위에 퇴적층처럼 쌓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청각적인 흔적으로 남겨지게 되면서, 결국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 테이프에서 확인되는 것은 방 안에서 울리는 반향, 즉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소리뿐이다. 결국, 반사되는 소리가 원래의 녹음된 목소리를 덮어버려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소리-공간에 관한 연주는 소리-시간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관객이 듣게 될 반복적인 연주자의 목소리는 각각의 연주자가 위치한 공간으로부터 파생되어 흐르고 반사되어 옆 연주자로 이어지게 되는데, 관객들은 벽 너머에 서서 연주자들 사이에 흐르는 소리-시간을 소리-공간을 통하여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 공연은 소리에 관한 하나의 서사가 된다.

아마도 대부분 관객에게 소리-공간이란 낯선 범주의 것이리라 생각된다. 소리나 청각에 관하여 기술하려는 시도는 종종 과학의 견지에서 이루어졌을 뿐, 음향적 차원이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분야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청각 경험에 관하여 기술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으로 ‘듣기’라는 감각적 차원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들이 차단되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감각 또한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구성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소리-공간에 관한 이번 경험을 통하여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된 우리의 감각, 나아가 신체라는 이미 소여된 것들에 관하여 재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윤민화

https://ymhcurates.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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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STUDIO(Camera: 안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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