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대한제국의 미술, 빛의 길을 꿈꾸다 | '오얏꽃의 역사' 미디어 설치
2018
Client 국립현대미술관 MMCA
Project 대한제국의 미술, 빛의 길을 꿈꾸다 | '오얏꽃의 역사' 미디어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대한제국의 미술, 빛의 길을 꿈꾸다
학예연구사 | 배원정
2018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Deoksugung
Art of the Korean Empire, The Emergence of Modern Art
Curator | Bae Won-jung
2018

크레딧 보기

미디어 기획: 57STUDIO
협력 기획: 그라페스튜디오

감독 : 이미지(57STUDIO)
촬영: 김상일(PRODUCTION KEZR)
조명: 이병관(THE LIGHT BIRD)
조연출: 정한나
연출부: 강원모, 나영서
포커스: 정원우
촬영부: 곽재민
조명부: 이병관 정진욱 박기범 김치국 김백민
음악: 박지하
녹음&믹싱: THE VEAX’S STUDIO
편집: 이미지

프로그래밍 개발: 홍진훤(그라페스튜디오)
영상 내 텍스트: 황호윤, 조현진
코디네이터, 후반 편집: 안재영
디자인: 물질과 비물질

기록 영상 촬영: 엄준호, 이규연
기록 사진: 정현준
나레이션: 배우 이승준

작업 소개

57STUDIO는 대한제국 시기의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의 일환으로, 미술사학자 목수현과 협력하여 오얏꽃의 역사에 관한 설명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였습니다. 이 전시는 대한제국 시기의 회화, 사진, 공예 등을 통해 근대화로 나아가는 사회적 흐름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오얏꽃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번 영상에서는 그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미술사학자 목수현의 깊이 있는 자문을 바탕으로, 오얏꽃의 문화적 의미와 그 변천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영상은 사진과 텍스트를 통해 오얏꽃의 상징성과 그 역사적 흐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대한제국의 국가 정체성과 그 시기의 문화적 아이콘을 재조명합니다.

57STUDIO는 전통적인 역사 자료를 현대적인 영상 미디어로 변환하여, 관객들이 보다 생동감 있게 그 역사적 맥락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번 영상 콘텐츠가 대한제국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57STUDIO collaborated with art historian Mok Soo-Hyun to plan and produce an explanatory video on the history of the plum blossom, as part of an exhibition exploring art from the period of the Korean Empire. This exhibition focuses on examining the social movements toward modernization through painting, photography, crafts, and other artistic forms from the era.

The plum blossom, a significant symbol of the Korean Empire, is the central theme of the video, which delves into its historical background and symbolic meaning. Based on the expert insights of art historian Mok Soo-Hyun, the video visually explores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the plum blossom and its evolution, designed to make the content easily accessible and understandable for viewers. Through the use of photographs and text, the video effectively communicates the symbolic role of the plum blossom and its historical trajectory, shedding light on the national identity of the Korean Empire and its cultural iconography.

57STUDIO converted traditional historical materials into a modern video format, enabling the audience to engage more vividly with the historical context. We hope this video content contributes to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art and visual culture of the Korean Empire.

Installation View


오얏꽃 이야기, 4분 50초
The Story of oyat Flowerk, 2018
4mins 50secs

전시 설치 장면

Commissioned Work


* 이 영상은 57STUDIO 웹사이트 내에서만 재생 가능합니다.
* This video can only be played on the 57STUDIO website.

나레이션 | 목수현

국가 상징이 왜 나오냐면 외국과 수교를 하게 되면서 이미지를 요구하니까 줬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국기를 제정을 한 거고 그 다음에 다른 나라와 교류를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원래 가문의 문장의 전통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조선 왕실에서이 오얏꽃을 채택한 것은 근대화되는 시기에 영국이나 프랑스나 일본에서 왕실이나 혹은 천안과의 문장을 쓰는 것과 격을 같이 하기 위해서 문장을 제정한 것이라고 보고요. 조선왕실에서는 뭘 가지고 할까 생각하다가 ‘오얏 리(李)’글자로부터 오얏꽃을 채택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황실 문장이 아니라국가 상징의 하나로 쓰였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1900년에 훈 만들면서 훈장에서 채택하는 상징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가운데는 태극을 놓고 태극에서 빛이 뻗어 나가는 네 쪽에 금 자가 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그 빙 둘러서 오얏꽃, 이게 기본적인 포맷인데요. 기본적인 포맷의 태극과 오얏꽃은 같이 가고요.

이런 문양이 들어간 주화를 생산하는 거는 1885년부터 하는데1892년에 단양 은화에 나오는데 닷냥이라고 쓴 위에 다섯 잎의 꽃잎과 꽃술이 그려진 꽃이 명확하게 나오는 거는 제가 찾은 것 중에선 이게 가장 이른시기, 여기에 고종이 테라스 난간에 이렇게서 있는 그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난간에 오얏꽃이 굉장히 확실하게 보이는데 돈덕전이 석조전 지어지기 이전에 외교관들을 접견실로 사용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대외적으로 쓰이는 더군다나 양식 건축물에는 황실의 문장을 썼는데 그러나 이것은 황실만을 상징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이럴 때는 의료관들을 불러오는 거기 때문에 대외적인 ‘대한 제국의 이미지로서 역시 사용한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거죠.

1910년은 확실히 이제 경술국치가 일어나면서 국가는 없어진 거니까요. 주권이 있는 국가는 없어진 거고 대한제국 황실 일본의 천왕가 아래에 있는 황족 중의 하나인 이왕과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문서로 남아 있어요. ‘이왕가로 한다’ 그 똑같은 상징을 쓰지만 이게 이완과의 상징으로 되는 거죠. 공식적으로. 창덕궁 인정전의 오얏꽃 문양의 구리가 언제 박혔는가에 대해서 문헌상에 정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사진상의 비교 자료를 볼 때 1902년에 새끼노타다시가 찍은 창덕궁 사진에 인정 전에는 오얏꽃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인정전이라고 보고요. 1907년에 순종이 경운궁으로부터 이어해서 창덕궁을 수리해서 옮겨와서 살게 되거든요.

Screenshot

그리고 나서 확인될 수 있는 사진은 1910년에 경술국치 때 일본에서 이른바이란 병합을 기념해서 창덕궁 사진을 찍어서 내 사진집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오얏꽃이 명확하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변화의 시기는 아마도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한 1907년에 창덕궁을 수리하면서 황실 문장이라는 개념으로 창덕궁의 주전인, 정전인 인정전의 바가 넣은게 아닐까

이 옆서는 1910년에 한일병합 기념으로 일본에서 만들어서 배포한 것인데요. 엽서 화면에 오른쪽에는 메이지 전황 그리고 그 배경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고 왼쪽에는 순종 그리고 그 배경에 오얏꽃이 놓여 있고 그 아래쪽에 조선과 일본이 함께 있는 지도가 있고 그 둘을 아우르는 공작꽃이 펼쳐져 있습니다. 조선과 일본이 합병한 것이 마치 굉장히 경사로운 일인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의 오얏꽃은 더 이상 국가와는 관련이 없는 이왕가의 지금 상징으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1910년에 경술국치 이후에이 왕가가 되면서 그 이전에 ‘한성미술품공예제작소’라는 걸 만드는데 한성미술품제작소라는 곳이 민간에서 설립한 곳이긴 하지만 황실이 자본금을 굉장히 많이 대고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해요. 그래서 거기에서 왕실에서 사용하는 거니까 오야꽃 넣은 은공품이 칠기니 이런 걸 제작을 하는데 운영이 잘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1922년에 일본인에게 넘어가게 되고 ‘조선미술품제작소’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거든요. 그런데 주식회사 형태로 되기 때문에 만들던 물건은 여전히 만들지만 오얏꽃 문양을 넣은 일종의 조선관광기념품을 만들어서 일본인들이 조선을 와서 가져가는 고급한 물건으로 살 수 있는 걸 만들거든요. 그래서 오얏꽃은 1908년 무렵부터 이미 상업화 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래서 태극기와 무궁화와 오얏꽃의 운명은 10년을 기점으로 확 갈리는 거죠.

태극과 무궁화는 국가와 여전히 혹은 무궁화는 국토와 민족과 결합된 방식으로 이해가 되고 활용이 됐는데 오얏꽃은 그냥 이왕가과 왕실, 왕실이 쓰는 좋은 물건, 이런 식으로 브랜드가치가 되는 방식으로 태극이나 무궁화하고 오얏꽃이 갈라지는 지점은 뭐냐면 태극기는 나라가 없어졌으니까 못 쓰잖아요. 그런데 조선 국내에서는 못 쓰는데 3.1운동 이런 때만 한 번 나오고 들어가지만 외국에 있는 사람들은 상관없다고 일본의 통치를 안 받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은 ‘대한인국민회’ 같은 걸 만들 때 태극과 무궁화가 결합된 상징을 써요. 그리고 임시 정부에서도 그걸 써요.

그래서 나중에 대한민국이 됐을 때 그것을 해외 동포나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 그 문양을 계속 채택을 하니까’이게 사람들에게 제일 친숙하고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거다’ 라고 해서 태극기하고 무궁화가 그대로 채택이 되는데 태극은 의병이라든가 독립운동이라던가 이런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의 상징으로 여전히 생각을 해서 그걸 활용을 계속했고 나라가 없는 시기에도 그런데 오얏꽃은 왕실의 문장으로 국한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더 이상 국가와 결합해서 생각하지 않게 있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