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박래현, 오윤, 이승택)
2020
Client 국립현대미술관 MMCA
Project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박래현, 오윤, 이승택)

국립현대미술관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2020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Open Class
MMCA Collection
2020

작업 소개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10분 강좌로, 작가 12명의 작품을 매주 수요일 Youtube LIVE 를 통해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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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강지영
영상: 57STUDIO

프로젝트 내용

10분 영상으로 만나는 소장품, 열린강좌 – 미술관소장품강좌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이야기

1. 박생광 Park Saengkwang, 전봉준 Jeon Bing-jun, 1985
2. 고희동 Ko Huidong, 자화상 Self-portrait, 1915
3. 채용신 Chad Yongshin, 고종황제어진 Portrait of Emperor Gojong, 1920
4. 김환기 Kim Whanki, 론도 Rondo, 1938
5. 이응노 Lee Ungno, 군상 Crowd, 1986
6. 구본웅 Gu Bonung, 친구의 초상 Portrait of a Friend, 1935
7. 권진규 Kwon Jinkyu, 지원의 얼굴 Jiwon’s Face, 1967
8. 신학철 Shin HakChul,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Who Said They Saw the Sky?, 1989
9. 이쾌대 Lee Qoede, 여인 초상 Portrait of a Women, 1940s
10. 박래현 Park Rehyun, 노점 Open Stalls, 1956
11. 오윤 Oh Yoon, 춘무인추무의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1985
12. 이승택 Lee SeungTaek, 무제 Untitled, 1980

박래현 Park Rehyun, 노점 Open Stalls, 1956

오늘은 우향 박래현의 1956년작 <노점>이란 작품을 보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상당히 큰 규격의 작품입니다. 1950년대 전통 화단에 새로운 혁신, 새로운 화풍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박래현의 작품이 되겠습니다.

Park Rehyun, Open Stalls, 1956

Today, we will take a look at Open Stalls (1956) by artist Park Rehyun (pen name: Uhyang). As you can see, it is quite large. The work made a dazzling appearance on the 1950s art scene with its new, innovative style.

우향 박래현은 20세기 중반 대표적인 여성 화가로서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일본화를 수학한 화가입니다. 비교적 현장성, 현실감, 특정 공간을 생략한 여인의 모습을 2차색으로 표현한 것이 일본 미인도의 특징이라 한다면 우향은 그러한 바탕으로 미술 수업을 했지만 해방과 분단, 전쟁을 겪으면서 화풍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박래현은 아시다시피 운보 김기창의 부인입니다. 그동안 운보 화백의 대중성 때문에 그늘에 묻혀 있는듯 싶었는데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개최한) 우향 박래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에서 박래현의 면모가 새롭게 확인되었습니다. 운보 화백은 아시다시피 청각장애자로 소리를 듣지 못했지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남편에게 본인이 통역자가 되어외국 여행을 갈 때는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구어(口語)로 의사소통을 하게끔 바탕을 마련해 주면서 운보의 예술 세계를 꽃피우게 뒷받침 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삼중통역자”라는 뜻이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그러면서 매년 운보, 우향 부부전을 개최하면서 연구의 성과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아주 독특한 경우의 부부 화가로서 활동했다고 볼 수 있지요.

Park, one of the most talented women artists of the mid-20th century, studied Japanese painting in Japan during the colonial period. Typical characteristics of Japanese traditional figure painting can be seen in the way she has omitted a sense of specific, realistic site or space, and used secondary colors in portraying the women. Despite her educational background, Park’s painting style changed completely as Korea went through liberation, division and war.

As you know, Park Rehyun was married to renowned artist “Unbo” Kim Kichang. The retrospective of “Uhyang” Park Rehyun, held at MMCA, Deoksugung, to commemorate the 100th anniversary of her birth, was an opportunity to rediscover her qualities, which had been overshadowed by her husband’s popularity. Since Unbo was hearing-impaired, Park Rehyun was his interpreter on overseas trips, translating English to Korean, and Korean to, lip-reading, enabling him to communicate so that his world of art could flourish. She was a woman of iron will. This background explains the title Triple Interpreter. Every year, Unbo and Uhyang held couple exhibitions introducing their artistic achievements to the world. It was an unusual activity for an artist couple.

초기에는 인물 중심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다가 1960년대 후반으로 가면 추상 회화로 바뀌게 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엽전이나 맷방석의 형태를 따왔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 내용은 생명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성으로서 깊은 마음을 화면에 담았지요. 그래서 저는 띠의 형태를 ‘생명의 띠’라 보고 싶은데 그러한 생명의 띠 연작을 추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지금 봐도 생명의 띠 연작은 아주 생생하고 현대미술의 첨단을 보여 주는 것처럼 바로 어제 그린 것처럼 느껴지는 화풍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향 박래현은 뉴욕으로 가서 판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판화 기법을 수학하면서 다수의 판화 작품을 남기는데 지금 보아도 판화의 기법이나 내용이 신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생활과 예술을 겸비하다보니 작품 수량이 많지 않아 안타깝지요. 2000점도 아니고 200점 정도 유작이 남아있다는 것은아쉬운 일입니다. 작품 숫자는 적지만 초기작부터 만년작까지 주옥과도 같고 나름의 이야기가 작품에 강하게 스며 있습니다. 주제 의식, 채색, 주제와 기법, 형식과 내용이 다양하다는 점이 우향 예술 세계의 진면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 한국 미술이 새롭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향의 예술 세계를 재주목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번 덕수궁 전시에서 알 수 있고 그 대표작 중 하나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자 국전 대상 작품인 <노점>이 되겠습니다. 리어카에는 노점상이 있고 아이를 업고 광주리에 물건을 갖고 있는 여성들 그 뒤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 배경과 주인공을 새롭게 선택하여 주제를 해석한 면모가 보입니다. 주인공이 여성들인데 이국적 풍모가 들어 있죠. 10등신 이상의 늘씬한 키에 목이 길고 수족이 긴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 생활 현장이지만 여기에 등장한 인물들은 우향 박래현이 추구한 새로운 세계를 집약해서 상징화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로 면 처리 중심으로 인물을 해석 했지요. 기존 전통화는 선묘, 즉 필선을 중심으로수묵이라는 재료로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엷은 채색을 활용하면서 면 중심으로 인체와 건물 배경을 집약한 특징이 보입니다. 뒤에 나이든 가족이 보이고직선의 건물들이 배경에 있고 곡선을 중심으로 앞에 인물이 있고 직선과 곡선의 대비, 색채와 색채의 대비, 주인공이 왼쪽 좌편향으로 중심을 이루고 오른편은 배경을 이루고 강약 대비, 좌우 구도의 강약, 배경과 인물의 조합 이런 다양성을 작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우향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향 박래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한, 정점에 우뚝 선 작가가 아닌가 싶고 그 증거는 이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In the early years of her career, Park presented mostly human figures in her art, but in the late 1960s she made a transition to abstract painting. At first glance her forms resemble the shapes of ‘brass coin’ or the ‘straw mats’ used for millstones, but I believe they symbolize life and vitality. Her picture-planes capture the depth of her heart as a mother. So I think the band-shaped forms can be seen as “bands of life,” which the artist expressed in a series of abstract paintings. Viewed today as well, the bands of life remain vivid, in a style that makes one feel they could have been painted yesterday in the most advanced mode of contemporary art. While in New York, Park experimented with printmaking. Studying new printmaking techniques, she produced numerous works that were unique in both technique and contents, even by today’s standards. Unfortunately, she left us relatively few of her works, due to the fact that she had to balance her demanding life with her art. It is lamentable that only about 200 works remain, and not 2,000. Though her oeuvre is not large, each of her works is a gem, from the earliest one to the last,all of them carrying powerful stories. I think the true qualities of Park’s world of art lie in their diversity, from sense of subject to coloring, technique, form and content.

The MMCA Deoksugung exhibition demonstrates how important it is to rediscover the art of Park Rehyun amidst the new developments of 20th century Korean art, particularly through the work Open Stalls, from the MMCA collection―a prize-winning work at a National Competition. There is a street vendor with a cart, and women holding baskets of goods, among them one who is carrying a baby on her back. Behind them we see modern style buildings. The artist has interpreted the theme in a novel manner, by making new choices of background and subjects. The women are the main subjects, and they convey an exotic appearance with their tall, slender figures, and long necks, arms and legs, drawn in somewhat exaggerated proportions. Though it is a scene of everyday life, the figures in the painting are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new world pursued by Park Rehyun. Park interpreted the human figures mainly through fields of color. While traditional-style painting was achieved through lines, using brush strokes in traditional ink-wash, the main characteristic of this work is its use of lightly applied colors, integrating human figures and background architecture in a composition based on solid shapes and fields of color. The older family in the back, the buildings constructed in straight lines in the background, and the figures of curved shapes in the foreground form a diverse compositional scheme, showing contrasts between straight and curved lines, contrasts among different colors, proportional balance between the figures on the left and the background on the right, dynamic contrast, and combinations of elements. In my opinion, this is her most representative work from the 1950s. Not only as a woman artist representing the 20th century, but as a leading Korean artist, Park Rehyun definitely merits reillumination, and this painting can be seen as the evidence.

오윤 Oh Yoon, 춘무인추무의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1985

오늘은 오윤 화가의 <춘무인추무의>라는 판화를 감상하겠습니다. 오윤은 1980년대 미술 운동의 주역으로 역사에 남는 큰 작가입니다. 1980년대라는 시대 상황은 군사 정권 시대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는 시대의 변혁기라고 할 수 있지요. 오윤은 ‘미술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노력한’ 화가입니다. 그래서 전통, 민족, 사회, 크게는 통일과 같은 다양한 담론을 작품에 개성적으로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쉽게도 40세에 요절한 짧은 생애 때문에 그의 커다란 꿈이 완성되지 못했지만 시도 자체는 1980년대 운동의 커다란 거목으로 우뚝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Oh Yoon,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1985

Today, we’ll be taking a closer look at this linocut print by Oh Yoon, entitled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Oh Yoon is a great artist who has gone down in history as one of the leaders of Korean art in the 1980s. In Korea, the 1980s was a time of major transition, from the era of the military regime to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As a painter, Oh Yoon tried to “restore art’s function as language.” In doing so, he dealt with various themes related to Korean tradition, identity, and society, as well as unification. Sadly, because his life was cut short when he died at the young age of forty, he was not able to fully realize his vision. But even his attempts made him a giant in the art world of the 1980s.

오윤은 원래 조소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목판화 운동의 대부처럼 다양한 소재의 목판화를 남겼습니다. 오윤 목판화의 특징은 흑백으로 소재를 단순하게 구성하는 미, ‘칼맛’이라는 목판 특유의 특징을 살리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오윤 예술 세계의 바탕에는 전통성,크게는 민족성, 시대 정신과 같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오윤의 부친은 유명한 소설가인 오영수입니다 저도 오윤 화가를 통해서 아버지의 장서였던 홍명희의 『임꺽정』이란 소설을 빌려 본 추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오윤 작가와 이 소설로 토론을 한 바 있는데 오윤 예술 세계의 바탕에는 임꺽정과 같은 전통성, 달리 표현하면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이 가득 스며있음을 알 수 있었고, ‘옛 것을 거울로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오윤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윤은 조소 작품도 남겼지만 회화 작품도 다수 남겼습니다. 특히 ‘마케팅 시리즈’는 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소재로 새로운 화풍을 보였습니다. ‘지옥도’에서는 지옥에서까지 상품성을 강조하는 광고판이 혼재함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영역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윤의 집안에는 ‘동래학춤’ 전승자가 있었듯 그는 ‘춤’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깊었습니다. 전통 무희를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오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춤 동작은 어느 대목, 어느 순간의 몸동작이란 것을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정확성과 사실성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단순히 춤을 소재로 하였지만 소재주의로서 춤의 겉모습만을 따온 것이 아니라 춤이 갖고 있는 연희 정신, 공동체 의식까지 작품 속 깊이 담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윤 작품은 역동적이고 진솔하며 사실성이 스며 있습니다.

Although he originally studied sculpture, Oh later created woodblock prints on various themes and motifs, such that he became something like the “godfather” of Korean woodcut prints. His woodcut prints were characterized by the beauty of their simple compositions in black and white, conveying the so-called “flavor of the knife,” a unique feature of woodblocks. Oh’s works are based on themes like tradition, or larger themes like “Koreanness” and the spirit of the era. Oh Yoon’s father was a famous novelist, Oh Yeong-su. In fact, Oh Yoon once lent me his father’s copy of The Rebellion of Im Kkeokjeong. I later discussed the novel with Oh Yoon, which helped me understand that his works were based on the same sense of tradition as the novel. In other words, his art is instilled with the spirit of “emulating the old to create the new.” Realizing this, I began to see Oh Yoon’s art in a new light.

Oh Yoon also produced sculptures, as well as many paintings. In particular, his Marketing series introduced a new style, satirizing capitalism amidst the industrialization of the 1980s. One of the works from the series, entitled Marketing-Scenes of Hell, shows a collection of commercial billboards filing the landscape of hell, expanding the realm of capitalist satire. One of Oh’s relatives was a “transmitter” of the “Dongnae Crane Dance,” Kore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Oh also had a deep understanding of dance. In fact, the dance movements in Oh Yoon’s works are so accurate and realistic that scholars of traditional dance can tell which part of the dance is being performed just by looking at them. In taking dance as a motif, Oh did not merely borrow the external appearance of a dance. On the contrary, his art is deeply imbued with the spirit of traditional performance and the consciousness of community that is inherent in Korean dance. That’s why the art of Oh Yoon is so dynamic, genuine, and realistic.

1980년대 미술 운동에서 특히 강조되었던 것은 ‘현실주의’ 운동인데 그의 작품에서는 현실성, 시대정신, 민족성이 춤과 어우러져 오윤 특유의 화풍으로 승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춤’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낳은 공동체 정신의 대표적인 연희입니다. 서양 무용은 무대와 객석이 엄격히 구분된 예술 활동이라 한다면 우리의 전통 연희는 ‘마당놀이’라는 말에 비유할 수 있듯 연희자와 관객이 같은 무대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신명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윤 작품 세계에서 ‘신명’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1980년대 암울한 시대 ‘신명’이라는 개념을 작품에 담음으로써 오윤의 작품이 주는 울림은 당대 구성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오윤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애비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감싸 안은 형상의 소재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성애 시리즈’도 있는데 이는 외세를 직시하며 자신의 주체적 사고 방식을 염두한 작품입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완간한 기념으로 작가에게 포스터용 작품을 부탁했는데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오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애비>라는 작품입니다. 현실을 부대껴 온 표정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인 어린 소년을 감싸 안고먼 곳을 응시하는 형상입니다. <애비>라는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미술이 갖는 언어의 기능이면서 공동체 의식을 표상한 대표적인 작품이 되겠습니다. 역시 흑백 목판화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직설적이고 간단명료합니다. 또한 단순 구성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의(作意)가 쉽게 표현된 작품입니다.

This is the type of realism that was emphasized in the art movement of the 1980s. It was sublimated into Oh’s distinctive style of painting, wherein reality, the spirit of the times, and Korean identity were harmonized with dance. Dance is the representative type of performing art and folk entertainment that exemplifies the spirit of community engendered by the people of Korea. Unlike in the West, where dance is an artistic activity in which the stage and the audience are sharply divided, our traditional performance realizes the “world of sinmyeong” (i.e. joy, elation), in which the performers and audience join together on the same stage. This spirit was called “madang nori,” which means something like “playing in the yard.” The concept of sinmyeong is very important in the world of Oh Yoon’s art. By invoking sinmyeong during the dark era of the 1980s, his works had a special resonance that never failed to reach and touch people of the time.

Oh Yoon is also known for his Father series , in which a father embraces his son. And also his Maternal Love series, in which a mother holds a child, seeking to retain her independent way of thought in the face of foreign powers. A publishing company once asked Oh to create a poster to commemorate its series of world literature. The result was Dad, which became one of his most famous works. The father, with an expression that shows he’s been beaten down by life, clasps a young boy, his son, and stares off into the distance. The story told by this work shows art’s inherent function as language, which explains why it has become an iconic work representing the consciousness of a community. The story that the artist wished to tell is made especially clear through the form of a black-and-white woodcut print. Furthermore, the simple composition allowed Oh to easily express his creative intentions.

1980년대 미술 운동의 거목으로 역사에 남는 ‘오윤’이라는 작가, 목판화 운동의 선구자답게 후배 세대들에 의해 판화 운동의 큰 바람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우리 미술계에서는 판화 시장이 부재하다시피 하고 판화라는 장르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오윤의 작품은 오늘날 미술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입니다. <춘무인추무의(春無仁秋無義)>는 S자 형태로 마당놀이의 신명나는 모습을 단순 집약한 작품입니다. ‘봄에는 어짐이 없고 가을에는 의로움이 없다’ 이것은 상징적인 뜻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다’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농경 사회에서 주민 공동체가 마당에서 함께 사물놀이, 농악놀이의 선두를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며 S자 형태로 놀이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목판으로 찍어 채색한 ‘신명’의 대표적인 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동래학춤의 바탕을 가진 춤 연구가로서 마을 공동체 의식과 같은 공동체 정신, 또한 칼맛을 잘 어우러지게 만든 판화, 이러한 오윤의 특징이 모두 담긴 작품 중 하나로 1985년 별세 직전의 만년작 <춘무인추무의>라는 판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근 소장한 오윤의 중요한 작품입니다. <춘무인 추무의>, 오윤의 판화를 감상하셨습니다.

As a giant of 1980s art and a pioneer of woodcut prints, Oh Yoon inspired the younger generation of artists who succeeded him, and who persistently led the printmaking movement. Actually, the art print market is almost nonexistent in Korea, and prints still don’t receive much attention. But to this day, Oh Yoon’s works continue to gain attention and popularity in the art market. Having an S-shaped composition, this workis a simple portrayal of the joy and excitement of “madang nori.” The title has a symbolic meaning: “no benevolence in the spring, no righteousness in the fall.” It can be translated like the current title,“If you don’t sow seeds in the spring, you’ll have nothing to harvest in the fall.” This work depicts members of a farming community playing together back to back in an S-curve, engaging in traditional performances such as “samul nori” (traditional percussion music with four instruments) and “nongak nori” (farmers playing music and dancing). It’s a representative image of “sinmyeong,” made by painting onto a woodcut print. As a scholar of the “Dongnae Crane Dance,” Oh produced this print that harmoniously combines the spirit of community with the “flavor of the knife.” Showing all of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Oh’s art, this is also one of the last works he produced just before his death in 1985. MMCA recently added this important work by Oh Yoon to its collection. This is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by Oh Yoon.

이승택, 무제 Untitled, 1980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승택 작가의 <무제>라는 작품을 함께 감상하시겠습니다.

1980년 작품인데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나무죠.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무언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까치집 같은 둥지가 곳곳에 뭉쳐져 있는데 노끈으로 감은 헝겁 뭉치를 20군데 정도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자연에서 채취한 나뭇가지에 일정하게 둥지와 같은 형태를 묶은 것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가를 오늘 알아보겠습니다.

Lee SeungTaek, Untitled, 1980

Hello, today, we’re going to appreciate Untitled by Lee Seungteak.

Produced in 1980, this is a very unusual work. It’s an ordinary tree, like we’re used to seeing, but it generates a new atmosphere. You can see these things resembling the nests of magpies in various places; he made about twenty of them by bundling rags and tying them with string. What story did the artist want to tell by creating this new type of work? Tying these nest-like shapes to tree branches in the same manner as we see in nature… Today we will explore the type of story that the artist wanted to tell.

현대미술은 경계선 없는 무한 확장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을 대표적인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50년대 후반 현대미술 운동이 본격화 되고 1960~80년대 시대가 흐르면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게 됩니다. 1960년대 실험미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1970년대 단색화 운동, 1980년대 리얼리즘에 의한 민중미술 운동, 이러한 다양한 사조들이 이 땅에서 전개 되는데 그 중 한 갈래로 실험미술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승택 작가는 화단의 주역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이단아 같은 아웃사이더, 국외자로서 본인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실험적으로 도전해 온 작가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고정관념에 대한 해체’,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이러한 작가 의식이 이승택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사실 이승택 작가는 표현력과 묘사력이 아주 우수한 작가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동상 작업을 다수 제작 했듯이 사실력이 있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형태가 없는 추상 세계 추상으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재료의 경우에도 전통적인 매체가 아닌 새로운 것, 미술계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비닐, 끈과 같은 것을 많이 사용했고 심지어 연탄재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였으며 지수화풍(地水火風)과 같은 근본적인 요소를 작업의 주 물질로 사용하였습니다. 땅, 물, 불, 바람 자체를 작품화 한 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허공에 깃발을 세워 바람에 날리게 한 깃발 작업, 강가나 들에 불을 지른다던가, 연기를 솟게 한다던가, 작품을 태워 강물에 띄운다던가 하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실험적 작가입니다. 물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격에 새로운 전복, 가치 전환, 가치 전도를 시도한 것이죠. 특정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하기’ 이것이 바로 이승택 예술의 특징입니다.

Contemporary art is characterized by infinite expansion, without boundaries. And I believe this work should be a representative example of that tendency. In Korea, contemporary art movements began to fully emerge in the late 1950s, and developed in various ways from the 1960s through the 80s. Various modern art movements developed in Korea, from the experimental art of the 1960s, to Dansaekhwa (“Korean monochrome”) in the 1970s, and Minjung art (“People’s art”), based on realism, in the 1980s. One of the important examples is the experimental art movement. Lee Seungteak is an artist who has consistently experimented with his art as an outsider and a stranger, or like a type of maverick, rather than taking a leading role in the painting field. In short, Lee Seungteak’s art is prominently based on deconstructing and challenging stereotypes and fixed ideas.

In fact, Lee Seungteak possesses excellent skills for expression and description. He produced a number of statues of historical figures, clearly demonstrating his expertise in the realistic style. But at the same time, in other works, he showed various elements of abstraction, without concrete form or shape, which cannot be strictly defined as abstract art. Likewise, for his materials, he mostly used non-traditional things, such as plastic and strings, and even briquette ashes, which are not commonly used in art. He also used the fundamental elements, such as soil, water, fire, and wind, as primary materials for his works. Transforming actual soil, water, fire, and wind into a work of art is very unusual. He’s the type of experimental artist who tries various things like putting a flag up in the air and letting it blow in the wind, or starting a fire by a river or in a field, making the smoke rise, or setting fire to a work before floating it on a river. All of these are attempts to overthrow, convert, and reverse values relating to the inherent characteristics of materials. Attempting to instill new meaning in the unique traits of a given object or substance is one of the defining characteristics of his art.

‘거꾸로 보기’ 이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본 결과의 작품이 나의 예술 세계다, 일반적으로 ‘조각’이라고 하면 전통적 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형태를 주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비조각이다,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비조각’ ‘형태 없는 형태’ 그러다 보니 다루어지는 소재, 재료, 주제들이 확대 발전할 수 있는 경우를 보여주었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오늘날까지 현역 작가로 부단히 실험정신을 작품의 녹여내고 있는 이승택, 이승택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끈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노끈을 사용한 작업을 한동안 많이 했는데 – 돌과 같은 작업, 돌을 끈으로 묶다 보니 견고한 돌이 부드러운 물체로 보이게끔 착시 효과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끈을 묶지 않고 묶여 있는 흔적만 남기는 돌의 형태가 울림이 큰 작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끈을 계속 묶고 묶여진 흔적을 지그재그로 벽면에 붙이기도 하고 평면 위에 일정하게 기하학적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또한 형태가 없는 모습으로 다양하게 끈을 사용하는 실험도 많이 해왔습니다.

성황당이나 당산나무에서는 무속의 결과로형형색색 천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예술 세계의 근원을 올라가다 보면 그러한 무속과 같은 세계와 연결됩니다. 전통적인 모습을 작가가 포착해서 자기화 한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깃발, 끈과 같은 것이 무속에서 ‘새롭게 의미 부여하기’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소재에 주목해서 형태가 없는 작품, 한 번 설치하면 사라지는 작품, 대지미술이라던가 퍼포먼스라던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세계를 읽어왔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무제>라는 작품입니다.

He makes a statement like, “I look at the world upside down and inside out, and the result is my art.” In general, when it comes to sculpture, one uses traditional materials to produce some form, but Lee rejected this in creating so-called “non-sculpture.” Pursuing “non-sculpture” and “form without form,” he showed new ways for expanding and developing the possible motifs, materials, and themes of art. From the late 1950s to today, he has persistently transmitted his experimental spirit in works that often emphasize the meaning of strings or cords. He’s been working extensively with strings or ropes for quite a while. With stones… he ties stones with ropes, generating an optical illusion in which a solid stone looks like something soft. In some cases, the actual rope is gone, but the stones still bear the grooves or traces of rope, for a shape that is deeply resonant. He has long experimented with using strings in diverse ways, such as repeatedly tying them, or creating traces by tying them in zigzag patterns on a wall, or in geometric patterns on a flat surface, producing some shapeless form.

In Korean shamanism, colorful cloths are hung around a Seonghwangdang Shrine and Dangsan Tree in order to protect a village. So if we trace the roots of Lee’s art, we can see that they’re connected to traditional shamanism. His art is the result of capturing traditional aspects and recreating them in his own way. I think that the flags or strings, etc., are his way of “giving new meaning” to shamanism. Focusing on new materials, he has expressed his world in many different ways, including shapeless works, works that disappear after being installed, works of Land Art, and performances. Another such result is this work, Untitled.

언뜻보면 꽃과 같기도 하고 새(鳥) 집과 같기도 하고 나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와 성격을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전환하여 새롭게 발견하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발견하기’ ‘발견’이란 점이 중요한 열쇳말이 됩니다. 고정적인 상징이나 의미를 ‘거꾸로 뒤집어 보기’ 새로운 세상이 보이게 되죠, 거꾸로 보면. 미술계의 국외자처럼 이 세상을, 미술계를, 거꾸로 뒤집어 보는 습관이 이러한 작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꾸로 보기’ 이 점이 이승택 작가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세상을 보는 방법 중 하나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작품은 우리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갖게 합니다.

At first glance, it’s like a flower or a bird’s nest. But here, the unique meaning and character of a tree have been transformed in the artist’s own way, so that it can be discovered anew and given new meaning. I think this is a characteristic of many contemporary artists, including Lee. The crucial keyword is “to discover.” When you flip a fixed symbol or meaning upside down, you will see a new world. I believe that this work is associated with his habit of turning the world, or art itself, upside down, like a stranger in the art world. This “looking upside down” is one of the ways of seeing the world that he proposes, and the result is this work. How will you see the world? And how will you interpret it? This work forces us to ask ourselves many such ques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