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 아시아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 | 컨템포러리 토크 : 헬리 미나트리X막스-필립 아센브렌너
2015
Client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Project ✍️ 아시아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 | 컨템포러리 토크 : 헬리 미나트리X막스-필립 아센브렌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아시아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 ‘컨템포러리 토크’
헬리 미나트리 X 막스-필립 아센브렌너
2015.1.24-7.25

Asia Culture Center
Asian Arts Theatre ‘Contemporary Talk’
Helly Minarti X Max-Philip Aschenbrenner
2015.1.2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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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기획 : 아시아예술극장, 두산아트센터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구성/편집 : 57STUDIO

작업 소개

‘아시아’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오늘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점과 태도를 탐구하는 아시아예술극장은 이 질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 소통을 도모하였습니다. 개관 페스티벌은 이러한 비전과 방향성을 집약하는 축제로, ‘아시아 동시대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는 꾸준히 갱신되는 대화의 장입니다.

개관 페스티벌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서울 두산아트센터와 공동 주관한 컨템포러리 토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는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평론가, 기획자들이 모여 현재의 아시아, 예술, 문화, 사회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대화가 남아 있는 소중한 아카이브로, 57STUDIO는 이 토크의 하이라이트 영상 기획과 편집을 진행하였습니다.

The Asia Arts Theater, which explores what ‘Asia’ means today and the perspectives and attitudes towards discussing the present,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these questions and fostered communication that transcends nations and cultures by bringing together diverse voices. The opening festival is a celebration that encapsulates this vision and direction, serving as an ever-evolving forum that redefines ‘contemporary Asian art.’

As a preliminary program for the opening festival, we co-hosted a contemporary talk event with the Doosan Art Center in Seoul. This event was a gathering where artists, critics, and curators participating in the festival came together to discuss contemporary issues in Asia, art, culture, and society. The meaningful conversations from this event have been preserved as a valuable archive to this day, and 57STUDIO planned and edited the highlight videos of this talk.

프로젝트 내용

컨템포러리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동시대성은 무엇인가.

‘컨템포러리 토크’는 동시대 공연예술계를 이끌고 있는 예술가, 프로그래머, 큐레이터의 현재 고민과 비전을 들어보는 무료강연 프로그램이다.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총 7회 진행된다. 영화, 공연,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지금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본다. ‘컨템포러리 토크’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2015년 9월 아시아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다.


What is Contemporary?
What is the Contemporaneity of an Artist?

Contemporary Talk is a free lecture program where we hear the current concerns and visions of artists, programmers, and curators leading the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scene. It runs once a month from January to July 2015, for a total of seven sessions. We listen to how artists, who are active in various fields such as film, performance, and visual arts, and who live in this era with us, see, hear, and think about these times.

The works of the artists participating in Contemporary Talk can be seen at the opening festival of the Asia Arts Theater in September 2015.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강연 소개글

(막스-필립 아셴브랜너)
그동안에 있었던 다섯 번의 컨템퍼러리 토크는 아시아예술 극장의 개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의 토크였는데요, 이번부터는 아시아예술 극장의 시즌 프로그램과 관련된 분들을 초청하는 자리입니다. 특히 시즌 프로그램 중에 하나로 아시아 윈도우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다른 지역의 프로그래머나 기획자를 초청해서 아시아예술 극장의 공간을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동시대성에 관한 큰 주제들을 초청된 프로그래머 나름대로 탐구해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헬리 미나르티)
10월에 있을 저의 시즌 프로그램 프로젝트의 제목은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바로 응시, 투영, 신화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무용적인 실천 면에서 이 주제를 탐구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1978년에 발표됐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작에 등장한 개념에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서구사회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나타났던 식민주의를 통해서 어떻게 피식민 대상자들이나 다른 문화를 서구사회가 바라봤는지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응시’인데요, 이것은 나중에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지배 대상들을 바라보는 실천적인 중요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1세기 반 정도 시간을 거슬러서 1889년 정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서구 식민주의가 활발했던 시기인데요. 당시 파리에서는 식민주의적인 전시들이 많이 열렸는데요. 이런 종류의 전시들은 식민주의자들이 식민주의의 성과를 자랑하고자 하는 장으로 활용되었고 이런 근대적인 프로젝트가 6개월 정도 지속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여기에 추가적으로 식민지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면에서 응시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는 지점이 생겨납니다.

사진을 보시면 등장하는 것이 자바섬 출신의 무용수 네 명인데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초청을 받아서 춤 공연을 펼치면서 말하자면 인도네시아의 토속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 보면 프랑스 백인이 그림의 제목에도 ‘추파를 던진다’ 라고 제목이 나와있는데요. 이 무용수들의 나이는 굉장히 어려서 약 13살에서 14살 정도이고 당시 프랑스인들이 보기에는 몸을 가리는 소위 정숙한 여인들의 복장이 아니라 까무잡잡한 피부가 드러나는 독특한 의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 한 장이 소위 토속적인 문화 토착민들에 대한 응시 행위, 또는 응시의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식민주의적인 전시는 1851년 런던의 전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유럽 여러 도시에서도 이런 전시가 이루어졌지만, 특히 파리의 박람회를 선택한 이유는 전통 무용을 보여주는 플랫폼에 대해서 얘기할 때뿐 아니라 이것이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나타났던 근대 무용의 움직임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무용수들의 공연이 굉장히 인기가 좋기도 했지만 무용수들은 예술가로 받아들여졌다기보다는 민족 지학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관객들 중에는 작가나 고갱 같은 화가도 있어서 예술계에도 영향을 끼친 측면도 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11년 후 1900년에 파리에서 비슷한 박람회에서는 연출가 오토 지로가 이끄는 일본 극단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극단은 모두 남자배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사다 야코라는 여배우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사다 야코는 무용수로 활동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피카소가 사다 야코를 그렸던 세 장의 스케치, 그리고 사다 야코를 게이샤로 묘사했던 포스터 한 장을 볼 수 있는데요 이때부터 파리에서 일본을 오리엔탈리즘적인 대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지금까지도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투영’, 혹은 투영의 행위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응시’가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방금 말씀드린 시기 이후에 어떻게 ‘투영’이 되기 시작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920,1930년 대 유럽에는 소위 이국 무용을 하는 무용수들이 굉장히 많아졌는데요, 남녀 무용수들이 의상이나 이런 것들 면에서 이국적인 대상을 굉장히 열심히 표현하려고 했던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럽인들이 상상했던 동방의 모습을 표현하는 무용이었고요. 루스 생 드니 같은 경우는 이후에도 이런 면에서 근대 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작품 대부분을 보면 루스 생 드니 본인이 게이샤가 되거나 힌두 여신인 라다가 되거나 자바 공주가 되거나 이런 움직임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들은 모두 그녀가 아시아에 와보기 전에 만든 작품들입니다. 그러다가 1925년 1926년경에 드디어 동아시아에서 투어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것을 오리엔탈 투어라고 불렀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부분은 아시아에 직접 방문하기 이전과 이후에 그녀의 무용 작품들이 어떤 변화를 보여주었나 하는 것입니다.

1931년 파리에서 다시 박람회가 열리는데요 상황이 달랐던 부분은 1889년 같은 경우 식민주의화 과정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면 1931년에는 그 식민주의화 움직임이 조금씩 쇠퇴해 가던 초기 단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에서는 1889년 자바 섬을 소개한 것과 달리 1931년에는 발리섬을 소개하게 됩니다. 1931년 전시에서도 무용이 굉장히 중심이 되었는데요, 발리섬의 무용 같은 경우는 사원의 의식에 기반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의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의식을 위해서 의식의 일부였던 예술적인 부분들이 공연이 되면서 이런 박람회 맥락에 갔을 때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입니다. 마치 차나 커피 같은 상품을 홍보하듯이 사용이 되고 식민주의의 성과를 보여주는 경제적인 목적의 하나로 새로운 맥락에서 공연되었을 때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또 서구의 예술가들, 문학가들이나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실제로 발리섬으로 이주를 해서 새로운 오리엔탈 리스트가 되었는데요 그래서 발리섬에 있었던 예술이나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응시와 투영이 서로 연결되면서 서구인들이 발리의 모습을 응시하는 방식, 또 발리에 있었던 예술가들 혹은 무용수들이 응시에 대한 반응으로써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투영하는 방식들이 연결되게 됩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신화, 신화의 생산/재생산인데요. 방금 말씀드렸던 것은 30년대의 발리 모습이고, 요즘 발리에 가보시면 께짝 무용이라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원을 그려서 추는 께짝 무용이 유명합니다.
께짝 무용을 보시는 분들은 이것이 종교적인 행위와 연관된 전통적인 행위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간단히 검색만 해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 께짝 무용은 나중에 새롭게 창작된 무용입니다. 께짝은 50명에서 100명의 남자들이 입으로 단조로운 형태의 주문 혹은 구절들을 외우면서 행해지는 의식 같은 무용인데요. 지금 이렇게 생겨난 새로운 형태는 월터 스피스(Walter Spies)와 발리의 무용수였던 리와닝박(Wayan Limbak)이 같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고 또 하나의 설은 미국 출신으로 발레 기획자이면서 할리우드 영화에 많이 참여했었고 발리에 9년 동안 거주했었던 캐서린 멀선트(Katherine Mershon)가 창작에 참여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2차대전 후에는 세계적으로 정치적인 구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국가 간의 전 세계적으로 진보를 위한 프로젝트들은 전혀 막힘이 없이 계속 진행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경우 뉴욕에서 세계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고요. 64년, 65년에 인도네시아가 참여하면서 무용이 다시 중심적인 위치를 얻게 되었고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이제 신생국가로서 비슷한 관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냉전 이후 21세기 지금은 엑스포로 이어져 있는데요, 70년대 오사카에서 있었던 엑스포도 인도네시아 무용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행사였고 가장 최근에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 사진에 보시는 것이 중국관인데요 저한테는 조금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건물을 ‘동방의 왕관’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우주선 같은 건물에 다시 동방, 오리엔트라는 용어가 돌아오게 되었고요. 이 건물은 2년 후에 다시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식민 근대성의 프로젝트, 근대 프로젝트,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후기 근대 프로젝트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세 단계를 거치면서 무용이 여러 역사적인 궤적을 타고 왔는데요. 이런 근대 프로젝트에서 동양이 투영되는 여러 가지 방식에서 무용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상하이 엑스포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면무용 같은 작품들이 많이 공연이 되었고 점점 스펙터클의 측면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서치를 통해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오게 되었고 저는 이 질문들을 세 가지 방면의 기획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응시’, ‘투영’, 신화라는 키워드를 여러 역사적인 궤적들과 연결시켜서 세 가지 방면에서 다중적인 개입 혹은 침투를 기획하고 있는데요. 먼저 안무가들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솔로 작품을 만들고 또 전시를 기획하고 학자들을 초청해서 두 번의 워크숍을 통해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