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김환기, 이응노, 구본웅)
2020
Client 국립현대미술관 MMCA
Project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김환기, 이응노, 구본웅)

국립현대미술관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2020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Open Class
MMCA Collection
2020

작업 소개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10분 강좌로, 작가 12명의 작품을 매주 수요일 Youtube LIVE 를 통해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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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강지영
영상: 57STUDIO

프로젝트 내용

10분 영상으로 만나는 소장품, 열린강좌 – 미술관소장품강좌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이야기

1. 박생광 Park Saengkwang, 전봉준 Jeon Bing-jun, 1985
2. 고희동 Ko Huidong, 자화상 Self-portrait, 1915
3. 채용신 Chad Yongshin, 고종황제어진 Portrait of Emperor Gojong, 1920
4. 김환기 Kim Whanki, 론도 Rondo, 1938
5. 이응노 Lee Ungno, 군상 Crowd, 1986
6. 구본웅 Gu Bonung, 친구의 초상 Portrait of a Friend, 1935

7. 권진규 Kwon Jinkyu, 지원의 얼굴 Jiwon’s Face, 1967
8. 신학철 Shin HakChul,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Who Said They Saw the Sky?, 1989
9. 이쾌대 Lee Qoede, 여인 초상 Portrait of a Women, 1940s
10. 박래현 Park Rehyun, 노점 Open Stalls, 1956
11. 오윤 Oh Yoon, 춘무인추무의 No Sowing in the spring, No Harvest in the fall, 1985
12. 이승택 Lee SeungTaek, 무제 Untitled, 1980

김환기 Kim Whanki, 론도 Rondo, 1938

오늘은 김환기의 <론도>라는 작품을 같이 보겠습니다.1930년대에는 추상 미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됩니다. 이전까지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아카데미즘’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러한 주류 사이에서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본질 추구의 ‘추상 회화’가 대두됩니다. 1930년대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는 김환기(金煥基,1913-1974), 유영국(劉永國, 1916-2002)과 같은 화가가 있습니다. 도쿄에서 이러한 새로운 화풍을 일구었는데 ‘문화학원’이라는 미술학교,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서 유학 생들이 새로운 화풍을 습득하게 됩니다.

Kim Whanki, Rondo, 1938

Today, we’ll look at the work entitled Rondo painted by Kim Whanki. In the 1930s, abstract art came to the fore in the Korean art scene. Before that, ‘Academism,’ a style that focuses on the literal representation of objects, had been the mainstream. ‘Abstract painting,’ one that pursues the essence of an object emerged as the new wave. The pioneers of abstract painting in the 1930s are a group of artists including Kim Whanki (1913-1974) and Yoo Youngguk (1916-2002). They developed this new style of painting in Tokyo. In particular, international students acquired a new style of art at an art school named the Culture Academy and the Avant-Garde Western Painting Research Institute.

김환기는 동경 유학 시절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서 미술의 기초를 쌓게 됩니다.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지다 쓰구지(藤田嗣治, 1886-1968)와 같은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김병기 화백의 일대기를 기술한 『백년을 그리다』라는 책에서 당시 사진을 소개했는데 여기 보면 김환기와 김병기(화가 김찬영의 아들, 1916~)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학생은 도쿄미술학교를 다녔는데 도쿄미술학교는 관립학교이기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인 화풍 ‘아카데미즘’을 추종했다면 유영국, 김환기, 김병기와 같은 화가들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화풍을 추구할 수가 있었겠지요. 김환기의 작품 <론도>는 그러한 환경의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제목이 <론도>라고 되어 있듯이 음악성을 기본으로 한 작품이 되겠습니다.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형태가 있고 대상을 사진 찍듯이 사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한 그림입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곡선을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곡선과 직선을 적절하게 배치한 구성을 보이고 있지만 곡선의 특징을 화면에 담았네요. 그러면서도 노란색, 푸른색과 같은 원색을 잔잔하게, 적절하게 배치한 아주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1930년대 화가로서 출발할 즈음에 <론도>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이 무렵 다른 작품들이 지금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지만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다양하게 시도되었음을 문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While studying in Tokyo, Kim Whanki learned the foundation of art at the Avant-Garde Western Painting Research Institute. At the institute, there were also painters like Fujida Tsuguji (藤田嗣治, 1886-1968) who had returned from France. In a biography of painter Kim Byungki entitled Painting for a Hundred Years, I introduced a photograph of the times. It shows Kim Whanki and Kim Byungki (son of painter Kim Chan-yeong, 1916~). Most international students attended the Tokyo School of Fine Arts. Being a government school, the school followed the highly conservative painting style known as ‘Academism.’ Artists like Yoo Youngguk, Kim Whanki, and Kim Byungki were able to pursue a new style because they didn’t attend the Tokyo School of Fine Arts. It seems that Kim’s work Rondo was a product of such an environment.

As the title Rondo suggests, it is a work based on musicality. We can see a shape implying a grand piano and figures are expressed who seem to be appreciating music. Since the work did not describe objects realistically, viewers can interpret the work in their own way. Also, the painting emphasized curves considerably. While it shows an artistic arrangement of curves and straight lines, it captur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curves in the painting. At the same time, Kim arranged primary colors like yellow and blue softly and skillfully on the canvas, resulting in an excellent composition. It is very suggestive that Kim left a work like Rondo at the beginning of his career as an artist in the 1930s. It is a pity that there currently exists very few works of this period. But documents say that many artists presented works with the theme of music at that time.

글도 잘 썼듯이 문학적 세계를 작가는 지향했는데 그러한 문학적 배경과 음악을 주제로 한 젊은 시절의 작품 <론도>. 젊은 시절 다양한 화풍과 예술 세계를 실험하고 추구했습니다. <론도> 옆 삽도(揷圖)로 소개한 <해협을 건너다>라고 하는 ‘백만회’ 전시에 출품한 비슷한 시기의 삽도를 보면 비교가 되지요. 백만회 출품작은 세필로 사실적으로 그린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같은 작가의 같은 시기 작품이라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김환기는 30년대 중후반 추상적 회화도 추구했지요. 그러다가 저렇게 사실적인 화풍도 보여줬습니다. 40년대, 50년대, 60년대에는 ‘유화 붓을 든 문인 화가다’ 평할 수 있을 정도로 문인 정신을 화풍의 기본으로 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죠. 60년대 중반에는 뉴욕에 정착하면서 ‘점 시리즈’로 일관하게 됩니다. 김환기는 신안 앞바다 기좌도(현재 전남 신안군 안좌도)라는 섬 출신입니다. 점 시리즈로 말년의 화풍을 시작하는데 그 때 색채가 ‘청색’ 시리즈입니다. 푸른색을 기조로 한 수십만 번의 점을 찍는데 마치 밤하늘의 별을 화면에 옮겨 온 것처럼 점 시리즈로 뉴욕 화단에서 작가 활동을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국내 미술 시장에서 김환기 작가의 점 시리즈가 최고가의 경매를 기록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미술 시장에서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라는 뜻이지요.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그렇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 지식인으로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찾아서 전라남도 신안에서 서울, 서울에서 파리, 파리에서 뉴욕을 거치는 노마드 인생을 보여 주면서 늘 새로운 화풍을 구현하였고 사실적인 묘사에서부터 이른바 반추상이라고 하는 문인풍의 구상 형식의 작품, 그리고 순수 추상까지 가는
화가의 일생을 보여주었습니다. 1930년대 한국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랑받는 소장품으로 소개되는 기록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Being a great writer, Kim pursued art that resonated with literature.Rondo is a work of his youth that focused on music in such a literary background. Kim experimented and pursued various painting styles and philosophies of art. We can see it in an illustration of Kim’s work entitled Sailing through the Channel that was submitted to the exhibition of an artist group named Baekmanhoe. It is found alongside the illustration of Rondo. The work depicts a ship at anchor in the harbor, drawn in a slender brush. It looks so exceptional that it is difficult to believe that the same artist painted the work.

While pursuing abstract painting from the mid to late 1930s, Kim engaged with a realistic style at the same time. In the 1940s, the 1950s, and the 1960s, he presented a new art that was based on the literati spirit. He was remarked to be ‘a literati artist with an oil painting brush.’ Settling in New York in the mid-1960s, he consistently worked on the ‘dot series.’

Kim is from an island called Gijwado (currently Anjwado, Shinan, Jeollanam-do). The painting style of his later period opened with the dot series. At that time, he produced a series showing blue colors. He marked hundreds of thousands of dots, mainly in different tones of blue, as if he had moved the stars in the night sky to the canvas. Focusing on the dot series, he continued to work in the art scene of New York. As an aside, in the Korean art market, Kim’s dot series holds the record of the highest-priced artwork at an auction. It means that he is the artist whose works are sold at the highest price. Of course, he is recognized in the international art market as well.

As an intellectual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he tried to discover new art.
Living a nomadic life, moving from Shinan, Jeollanam-do to Seoul, from Seoul to Paris, and from Paris to New York, he continuously realized a new painting style. He reveals his unique life as a painter, moving from realistic depictions to so-called semi-abstract works in the form of figurative painting that is reminiscent of literati painting, and eventually to pure abstraction. Rondo, painted by Kim Whanki, a pioneer artist of Korean abstract painting in the 1930s,
is a much-loved artwork in the MMCA collection.

이응노, 군상, 1986

이응노의 만년작 <군상> 시리즈입니다. 고암 이응노는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남긴 화가 중 한 분입니다. 이 그림은 무수한 사람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표현한 군중의 모습입니다. 광장에 가득찬 사람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보고 파리에서 고암 이응노는 이와 같은 <군상>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Lee Ungno, Crowd, 1986

This is a work from the series entitled Crowd, painted in Lee Ungno’s late period. Lee Ungno (artist name: Goam) is one of the great artists who realized unique artworks in Korean art history of the 20th Century. This painting depicts countless people, painted in repetition. A square is filled with people. Seeing Gwangju Democratic Uprising in 1980 in Paris, Lee began to produce this Crowd series in earnest.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면, 무수한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격동적인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무수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있지만 일률적으로 틀 안에 갇혀 있기 보다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크기의 사람들을 일필휘지 필법의 먹으로 종이 위에 표현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단 남녀노소를 분간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의 구별도 어렵고 그냥 사람입니다. 군중 시리즈의 대작, 오른쪽 하단부에 작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1986 Ung-No Lee’, 이응노는 작가로서 출발을 전통 세계에서부터 합니다.

이응노는 해강 김규진 문하로 입문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문인화를 그리다가 나중에는 산수화와 풍경화도 그리게 됩니다. 1950년대 말 무렵에는 독일을 거쳐 파리에 정착합니다. 파리 정착 이후로는 여러 가지 매체를 활용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장르적으로는 모필화를 기본으로 하지만 여러 가지 입체 작품, 콜라주, 형태가 있기도 없기도 한 작업을 꾸준히 하게 됩니다. 지필묵이 갖는 특징을 현대화 하면서 그의 작품은 문자 추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문자 추상에 이르러 이응노의 작품 세계는 자세하고 규칙적이며,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고암 세계의 일가를 이루게 되지요. 고암 이응노의 특징은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If we carefully look at the painting, we can see innumerable people dancing dynamically in a square. There are countless people repeatedly painted, however, rather than being confined in a fixed frame, The depicted figures look free. Lee expressed similar-sized people in ink with striking brush strokes on paper. If we look closely at the people,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age or gender. We cannot identify who they are, they are just people, In this large piece from the Crowd series, there is a signature at the bottom right. It reads “1986 Ung-No Lee.” Lee began his artistic career with traditional art.

Lee Ungno learned painting under Kim Kyujin. Initially, he produced literati painting, and later, landscape painting. By the end of the late 1950s, by way of Germany, he settled in Paris. After that, he continued to work using various media. As for the genre, he basically worked in ink and brush, but he also produced various three-dimensional works, collages, abstractions, and figurative works consistently. Modernizing the characteristics of ink, brush, and paper, his work develops into an abstraction of letters. Around the period of his abstract painting of letters, contemporary. Then he finally finds his own original aesthetics. However, he is unique in that he expanded the Korean art tradition creatively.

In other words, he integrated the East Asian cultural practices involving paper, brush, and ink into a greater whole and internationalized it widely. Although Lee worked in Paris in his late period, he did not abandon his Asian culture. He continued to highlight the qualities of ink and brush his entire life. His ink painting is remarkable, demonstrating the idea that calligraphy and painting are one thing. A striking feature of ink brush strokes and lines in calligraphyis the vividness and energy concentrated in the painting. Whether the work’s theme is letters, abstraction, figuration, or crowds like this, the energy of ink painting fully fills the space.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동북아시아의 지필묵 문화를 집성하여 국제화시킨 작가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는 생애 후반을 파리에서 작업하면서도 지필묵 문화를 놓지 않았습니다.
종이 위 먹그림의 장점을 평생 가져간 것이지요. 그의 먹그림의 장점은 서화일체 사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서예가 주는 필획, 선의 특징 선이 갖고 있는 기운생동(氣運生動)의 기운을 화면 가득히 집약하면서 작품 내용이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문자적이든, 이 작품처럼 군중 시리즈이든, 기운생동의 기(氣)가 화면에 가득찬 지필묵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 활동 외에도 교육자적 측면의 이응노를 살펴보겠습니다.그는 파리 세르누치 동양미술관 부설로 시작한 동양미술학교(1964~)를 맡아 본격적으로 후진 양성에 매진했습니다. 작가로서 유럽 문화권에서 모필, 지필묵을 기본으로 한 후진 양성까지 했다는 점이 이응노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응노는 생애 두 번씩이나 정치적 문제로 큰 시련을 겪게 되지요. 동베를린 사건으로는 옥중 생활도 하게 됩니다. 옥중에서도 많은 작업을 남겼는데 옥중 생활의 시련이 작가의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 인해 그는 민주화 시대에 동참한 해외 거주 작가이기도 합니다.

고암은 ‘화가에게 무기는 그림이다’라는 신념을 화면에 펼쳐낸 독특한 화가가 되겠습니다. 이응노 만년의 연작, 군중 시리즈 오늘은 고암의 예술 세계 마무리에 큰 성과를 이룬 작품 <군상>을 함께 감상했습니다.

In addition to artistic activities, we should also discuss his work as an educator. He taught in the Academy of Oriental Painting that began as the annexation of Musée Cernuschi Museum of Asian Art of the City of Paris, France, where he was dedicated to teaching students in earnest.Recognizably, even in the European context, Lee pursued the culture of ink painting, and expanded it by teaching students as well. Lee underwent a severe ordeal, twice in his life, because of political situations.Accused of the East Berlin Affair, he was imprisoned. Lee left behind many works, even from when in prison. The hardship of imprisonment widened and deepened his art. Lee was an artist who participated in the period of Korean democratization while living abroad.

Goam Lee Ungno is a unique artist who embodied the belief that ‘a painter’s weapon is painting.’ Crowd series of Lee’s late period. Today, together we appreciated Crowd, Lee Ungno’s significant piece that contributed to complete his vision in the art world.

구본웅 Gu Bonung, 친구의 초상 Portrait of a Friend, 1935

오늘은 특이한 그림 한 점을 같이 보기로 하겠습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화풍이 아주 특이하지요. 그림을 보면 상당히 자유분방한 필치의 유화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쯤에는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화풍들이 많이 나오게 되죠. 1910년대 고희동을 비롯한 유화 수용 선구자들이 이 땅에 나오기 시작했고 1920년대 소집단들이 나오면서일종의 화단이 형성됩니다. 이러저러한 다양한 화풍이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요. 그것이 1930년대에 오면 상당히 만발하는 것처럼 다채로운 미술계의 면모를 보이게 됩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죠. 전시 체제에서 1945년까지는 식민지 중에서도 암흑 시대로 부를 수 있겠지만 이전 단계에서는 꽃이 만개한 것처럼 보여지는 그런 시대의 그림이 되겠습니다.

Gu Bonung, Portrait of a Friend, 1935

Today, we’ll see a unique painting. It is Portrait of a Friend by Gu Bonung. The painting style is very unusual. A close look at this oil painting reveals a remarkably free use of brush strokes. In the mid-1930s, there were a lot of painting styles trying new artistic approaches. In the 1910s, pioneers of oil painting such as Ko Huidong appeared. As small groups increasingly emerged in the 1920s, a kind of art scene formed, and new painting styles developed. In the 1930s, this creative tendency was in full bloom showing variety in the art scene. This was the situation before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in 1937. The period from the start of the war to the end of Japanese occupation in 1945 could be called a dark age, but before that, the art scene in Korea seemed to blossom.

이 그림의 화가는 구본웅입니다. 구본웅은 (이 자막서부터 연보 삽입) 어린 시절 가정부의 실수로 신체를 훼손하는, 꼽추등이라고 당시에 불렀는데 키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신체적 불구를 가지고 평생 화업에 종사한 아주 독특한 존재의 화가가 되겠습니다. 파리에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있었다면 ‘서울의 로트렉’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진 구본웅입니다. 구본웅은 다양한 화풍과 문단에서도 많은 친구를 두면서 글도 많이 썼고 이러저러한 활동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기존 도쿄미술학교, 관립학교 중심의 아카데미에 의한 보수적 화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면 이에 반발하는 새로운 화풍이 대두되는데 그런 갈래 중 하나로 지금과 같은 구본웅의 화풍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 야수파적이다, 입체파적이다, 표현주의적이다, 이런 말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구본웅 작가를 어떤 사조에 묶기보다는 보수적 화풍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고 한 화풍이 되겠습니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1935년경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 제목 그대로 친구의 모습을 화면 가득 채웠습니다. 주인공을 표현한 형식이 아주 분방한 필치에 의해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려고 애쓴 작가의 의도가 화면 꽉 차게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베레라고 하는 모자를 삐딱하게 썼네요. 그러면서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입니다. 파이프 끝자락에 붉은색이 있고 연기가 있는 것으로 봐서 현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구요.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입을 살펴보면 입술에는 붉은 루즈 같은 것을 칠하고 있고 콧날에는 하얀색을 강조하면서 엑센트가 있는 반면 입 언저리에는 검게 처리해서 강약 대비, 흑백 대비를 강조한 모습이 보입니다. 인물의 전체적인 윤곽선을 확실하고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고 배경과 큰 경계없이 표현한 모습이 되겠습니다. 화가가 주인공을 어떻게 화면에 성격을 잘 드러내려고 했는지 고심한 모습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필치가 상당히 자유분방한, 그래서 야수적인, 어떻게 보면 입체적인 화풍으로 친구의 모습을 해석하고자 한 모습이 보입니다.

Gu Bonung painted this piece. Because of a nanny’s mistake in his childhood, Gu got handicapped. At that time, he was known by the derogatory moniker “hunchback” and became a very peculiar painter, engaging his entire life in painting with a crippled body. In reference to Henri Toulouse-Lautrec (1864-1901) in Paris, Gu was known as the “Toulouse-Lautrec of Seoul.’ Gu was active in many fields beyond painting, including writing. His friends included many painters of various styles as well as members of the literary scene of the time.

In the 1930s, there emerged a new painting style different from ‘academism’ a conservative painting style led by the Tokyo School of Fine Arts and by government schools. Gu’s work is an example of this new wave. At that time, his work was commented to be reminiscent of Fauvism and Expressionism. However, it is more appropriate to say that Gu opened up a new direction in art, different from conservative styles, rather than fitting him into existing classifications.

Let’s look at his work, Portrait of a Friend, known to be painted around 1935. As the title says, the subject filling the canvas is the artist’s friend. Free and bold brushstrokes reveal the personality of the sitter. We can see that the artist tried to express the character intensely. First of all, the friend is wearing a hat called ‘beret’ crookedly. Also, we can see a pipe in his mouth. The smoke and the red color at the end of the pipe indicates that he is currently smoking. A close look at the mouth shows a red treatment of the lips, and the nose is highlighted with a lighter color. On the other hand, the part around the lips is painted in black, creating a dynamic of the scene and the contrast of light and dark. The overall contour of the character is not painted clearly but expressed without a distinct boundary from the background. We can see how much the artist endeavored to express the personality of the subject in the painting. Basically, the brush strokes are quite free and bold. Therefore they are reminiscent of Fauvism as well as Cubism in a sense. The practice lets us know that the artist attempted to interpret the figure of the friend in such a style.

모자를 쓴 주인공은 시인 이상(김해 경, 1910~1937)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우뚝 솟은 문인이죠 <오감도>라고 하는 시(詩)라든가 <날개>와 같은 소설로 유명한 문단의 정점에 있는 위대한 존재 중의 한 분입니다. 27세경 도쿄를 갔다가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려 갇히기도 하고 결핵으로 건강이 안좋았는데 끝내 요절이라는 형태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가난하다’ 시인 이상은 말했는데 사실 이 그림 속에서도 비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작품 제작 배경과 현재까지 내려오게 된 경로 이런 것이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유족 집에서 나와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문학사상』 이라고 하는 월간 잡지의 표지화로 소개되면서 대중과 친해지게 된 배경을 가지고 있지요. 하나는 화가이고 하나는 문인, 시인 이상의 내면 세계를 구본웅은 특징있게 표현했습니다. <여인>이라고 하는 유화 작품은 활달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고 민화적 소재의 작품도 있고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만 활발한 화가 활동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30년대의 대표적인 화가 중의 하나인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을 함께 감상했습니다.

The man in the painting is known to be poet Lee Sang (Kim Hae-kyeong, 1910-1937). Lee is an outstanding writer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He is one of the great artists at the top of the literary scene known for excellent work such as Crow’s Eye View Poem and a short story entitled Wings. When Lee went to Tokyo at around the age of twenty-seven, he was confined as a rebellious Korean who didn’t obey Japanese rule. He also suffered from tuberculosis. In the end, he passed away at an early age. Lee said, “The one with no secrets is poor.” In fact, we can see that there is a secret in this painting as well. We do not precisely know what motivated the artist to create this work or how the work passed down to this day.

We only know that this work was found in the family’s house and began to be known in the art scene from the 1970s. The public became aware of the painting when the piece was introduced as the cover image for a monthly magazine entitled Literature and Thought. The work reveals a painter and a writer. Gu expressed the features of the inner world of poet Lee Sang in his painting. Gu left various works, including an oil painting Woman with a more vibrant style as well as paintings with Buddhist and folk motifs. However, he couldn’t fully pursue his painting ambition since he died at an early age of 47. Together, we appreciated Portrait of a Friend by Gu Bonung, who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Korean painters of the 193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