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김희진입니다. 오늘 뮤지엄 나이트에서 제가 소개해 드릴 작품은 1975년 안면도 꽃지해변, ‘전국광의 수평선 작업을 그리다’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1974~75년경에 전국광이라는 작가의 야외설치 작업인 수평선을 임동식 작가가 기억해 그린 회화 작품입니다. 임동식 작가에 따르면 이 작품은 1975년 8월 안면도에서 열린 제1회 야외 작품을 위한 캠핑에서 전국광 작가가 꽃지해변에 할배바위라는 곳에 흰 광목 천을 감싸안아서 수평선과 흰 천이 연결되어 보이게끔 한 야외설치 작품입니다.
우선 엄혹한 시절인 1970년대에 미술작가들이 야외 현장을 답사하고 조사연구하면서 창작을 해 보는, 마치 오늘로 치면 창작 워크숍의 전신과 같은 그런 모임을 캠핑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했다는 사실이 재미있고요. 또 현장 미학과 연구를 중시하는 임동식과 같은 당대 청년 작가들의 열정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당시 임동식은 전국광의 수평선을 보고 국내 미술계의 생소했던 야외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해변에 솟은 한 아름다운 바위를 한 바퀴 안아서 미국의 대지미술이나 독일의 자연미술관에 있는 자연 미술과는 그 분위기와 맥이 크게 다른 뛰어난 경관 예술이다 라고 찬탄한 바 있습니다. 작품 수평선은 자연물에 인위적 변형이 전혀 없이 임시적으로 작가가 개입해 경관에 보다 큰 전체와의 연결을 알아차리게 하고 또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수평선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그렇게 보임으로써 우리 시선이라는 문제 그리고 상, 이미지죠. 그리고 관법이라는 것을 성찰하게 하는 점에서 원작자인 전국광과 또 그 탄생을 기획한 임동식 두 작가의 혜안을 엿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이 작품을 찍은 슬라이드 필름에 문제가 생겨서 이 작품의 기록 사진은 없습니다. 당시 야외 작품집에 도록 편집을 맡았던 임동식은 전국광 작가에게 그 이후 안면도에 가서 다시 이 작품을 재현해 줄 수 있겠는가 부탁도 해 보았다고 하는데 당시 작가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재현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1990년, 전국광 작가가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면서 수평선이라는 작품의 존재는 그렇게 잊어져 갔습니다. 수평선에 내용과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못내 애석해하고 있던 임동식은 2001년, 다른 전시를 기획한 프로젝트 도록편집을 기해서 다시 안면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작품에 기억을 참고해서 사회를 촬영하고 그 사진 위에다 광목천 위치 해당하는 곳에 하얀 선을 그려서 넣고 그 이미지를 도록에 수록한 것이 전부입니다. 2001년 행위를 한 이후 임동식은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2001년 4월 1일 이성원, 임동식, 임정원 세 사람이 안면도 꽃지해변을 찾아가 촬영하고 그 위에 당시 내용을 아는 임동식이 그린다. 이 작품은 추후 이 작품을 아는 이들과 상의해서 다른 기회에 소개할 예정임을 밝히며 이 책을 보는 이들의 이해를 바란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지난해 임동식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기로 하고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2001년 자신이 만들었던 그 도록의 한 페이지를 꺼내놓고 그에 의지해 전국광 작가의 수평선을 100호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임동식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기록 사진을 회화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작품군이 있는데요. 어느 비평가는 이들을 도큐멘터리 회화라고도 불렀는데 저희는 이들이 1, 2차 기록들이 기억의 구성 과정에 참여하고 또 새로운 주제의식이, 가령 뭐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자연과 인간의 관계 쪽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새로운 주제의식이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구성으로 탄생한다는 측면에서 단순 기록 회화보다는 복합적이고 훨씬 입체적인 아카이벌 회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렇게 미세한 비평적 분류를 짚어 가다 보면 어느덧 이 작품이 미술에서 기록과 창작이라는 두 부류 간에 연계해서 원저자, 또 새로운 아이디어와 같은 여러 현대미술의 신화들 대표적으로 진본성의 신화 독창성의 신화 이런 것들이 있는데요. 또 그것을 디디고 만들어진 오늘날 맹위를 떨치는 저작권 이런 성립에 어떤 근간을 질문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때 이러한 작품들을 그간의 믿음에 준해 배제할 것이 아니라, 현재 행해지고 있는 원리를 부단히 참고하고 조정해서 바꿔 가는 일이 미술관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 이제 이렇게 전문적인 차원의 숙제는 잠시 접어두고요. 이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경험해 보시고 또 시대를 앞서간 두 작가의 혜안을 같이 경험해 보시고 무엇보다도 한 인간이 어떤 찰나에 경험한 벅찬 감동을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간직해 마침내 예술적으로 기록해 내는 행위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한번 가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문득 오늘 여러분이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설렘이 하나의 기억으로 떠오르지는 않을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