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정찬영, 이인성, 최욱경)
2020
Client 국립현대미술관 MMCA
Project ✍️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정찬영, 이인성, 최욱경)

국립현대미술관
열린강좌
미술관소장품강좌
2021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Open Class
MMCA Collection
2021

작업 소개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10분 강좌로, 작가 12명의 작품을 매주 수요일 Youtube LIVE 를 통해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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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강지영
영상: 57STUDIO

프로젝트 내용

10분 영상으로 만나는 소장품, 열린강좌 – 미술관소장품강좌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이 들려주는 소장품 이야기

1. 오지호 Oh Jiho, 남향집 Sunny Place, 1939
2. 장욱진 Chang Ucchin, 마을 Village, 1956
3. 안중식 An CHoongsik, 산수 Landscape, 1912
4. 정찬영 Jung Chanyoung, 공작 Peacock, 1937
5. 이인성 Lee Insung, 카이유 Kaiyu, 1932
6. 최욱경 Choi Wook-Kyung, 환희 Joy, 1977

정찬영, 공작, 1937

안녕하세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윤범모입니다. 오늘은 정찬영 작가의 <공작>이라는 대작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1930년대 여류 화가, 특히 채색화로 일가를 이룬 작가 정찬영입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 숫자가 아주 드물고 작가 생애의 후반부에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특히 채색화 전통을 새롭게 계승해서 발전시킨 화가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Jung Chanyoung, Peacock, 1937

Hello, I am Youn Bummo, the Director of MMCA. Today we will take a look at Peacock, a masterpiece by artist Jung Chanyoung. Jung Chanyoung was a woman artist of the 1930s who was especially proficient in traditional color painting. However, she has remained relatively unknown to the public, due to the small number of her remaining works, and the fact that she stopped working in later life. Nevertheless, I believe she is an important artist, a successor to the tradition of Korean color painting who achieved new developments in the genre during the 1930s.

1906년 평양에서 출생한 정찬영은 새로운 신문물에 대해서 눈을 크게 뜨게 되죠.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세기 전반부, 미술의 근거지라고 한다면 서울을 제외하면 평양권과 대구권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평양권은 새로운 서구적 문물이 일찍 수용된 곳이기 때문에 신미술에 관해서도 일찍 연구하였습니다. 1910년대 김관호, 김찬영과 같은 동경 유학생 유화가가 탄생하면서 근대기 새로운 유화의 본분을 보인 전통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정찬영의 스승은 이영일입니다. 채색화에 일가를 이룬 작가인데 일찍 작가 활동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작품이 극소수만 남아 있습니다. <시골소녀>라는 1920년대 말 대작 채색화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영일에게 전통 채색 화법을 배운 정찬영은 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게 됩니다. 일제강점하에 일반 작가들의 활동 무대는 <조선미술전람회>라는 매년 5월 개최하는 연례 공모전이 거의 유일한 무대였습니다.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못가>라는 채색화를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출품하였습니다. 공작새와 같은 ‘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내게 되는데 작가는 동물원에 가서 실제 여러 새와 동물들을 묘사하면서 관찰하고 드로잉을 회화로 연결하는 작업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Born in Pyeongyang in 1906, Jung had the opportunity to witness new culture. It is well known that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Pyeongyang and Daegu, as well as Seoul, were major centers of art. As a region that had accommodated the new Western civilization early on, Pyeongyang was also a center for the study of new forms of art. During the 1910s, artists such as Kim Kwanho and Kim Chanyoung, who had studied in Tokyo and begun a new tradition of oil painting in modern Korea, were from Pyeongyang. Jung’s teacher was Lee Youngil. He, too, was a proficient traditional color painter, but because he gave up his practice of art early, few of his works survive today.

Country Girl, a large masterpiece by Lee from the late 1920s, is among the MMCA collection. Jung Chanyoung, who studied traditional pigment painting technique with Lee, submitted her work to the Joseon Art Exhibition competition in the 1930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 annual Joseon Art Exhibition, held each May, was the only stage for the debut of ordinary artists. In 1929, Jung’s color painting Lotus was selected for the Exhibition, after which she continued to submit her works. Jung often painted birds, such as peacocks. On her visits to the zoo, she actually observed and sketched various birds and animals, diligently developing her drawings into paintings.

1935년에는 <소녀>로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창덕궁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1930년대에 이렇게 촉망받는 신예 여류 화가였는데 가정을 이룬 후 점진적으로 제작 시간이 줄어들면서 작품 제작과 서서히 거리가 있게 됩니다. 작가의 부군이 도봉섭이라는 식물학자였는데 6.25 전쟁 시 납북되는 바람에 (정찬영 작가가) 가장 노릇을 대신하게 되어 미술계와 거리가 멀어지고, 그 결과 유존작이 아주 드물게 된 사례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래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평양의 국가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조선미술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 상설 전시장에서 깜짝 놀랄 일을 겪었습니다 바로 작품이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정찬영 작가의 초기 등단작이라 할 수 있는 <연못가>라는 작품이 상설로 진열되어 있어 깜짝 놀란 바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그 원색 도판을 소개하면서 정찬영의 새로운 위상을 재확인하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In 1935 she received the Changdeokgung Award, the highest prize at the Joseon Art Exhibition, for her work A Girl. But this promising young woman artist of the 1930s gradually grew apart from her artistic practice after forming a family, due to her lack of time to paint. During the Korean War, her husband, a botanist named Do Bongseop, was abducted to North Korea, thus forcing the artist to become the sole breadwinner for her family. This misfortune further distanced her from the art scene, consequently making her an artist with very few remaining works. Long ago, on a trip to Pyeongyang, I visited the Chosun Art Museum, the national art museum of North Korea. There, I had a surprising experience. To my astonishment, Lotus, known as the artist’s early debut work, was in a permanent exhibition at the museum. Upon returning to Seoul, I introduced this work to people through a color photograph, thus confirming the new status of artist Jung Chanyoung.

<공작>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상하로 길게 된 한 쌍의 공작을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소나무 줄기에 앉아 있는 한 쌍의 공작 길게 내려뜨린 날개가 특징인 작품이 있고 또한 4곡 병풍 형식으로 날개를 활짝 펴는 공작을 화면 가득히 담은 작품이 있습니다. 공작은 날개의 문양이 참 아름답고 보기 좋지만 화가의 입장에서는 세필로 섬세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사실 그림 소재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공필 화법에 의한 세필의 기량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공작이나 소나무 표현과 같은 것이 도전하기 쉽지 않은 소재였을 텐데 정찬영은 세필 채색으로 공작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한국 회화의 주류는 채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일본의 특징이 채색이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는 채색화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채색화는 중국의 화풍으로, 그 분류법을 본다면 남종화 북종화로 나뉠 때 남종화의 수묵 문인화 계열과 비교한다면 북종화 계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채색 기교를 중심으로 하는 채색 북종화 계열인데 한반도는 문인 수묵화 계열로 화단이 형성되어 상대적으로 서화가들 사이에서는 채색이 높게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바탕 속에서 정찬영이라는 채색화가가 우뚝 존재했다는 점 이 점은 상당히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작> 대작을 보면서 채색 전통을 다시 생각하고 섬려한 작품에 담겨 있는 작가의 예술성 그리고 암울한 시대지만 화려한 공작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고자 했던 작가의 내면 세계 이런 것들을 두루두루 생각하게 하는 정찬영의 <공작> <공작>의 의미가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Peacocks, also part of the MMCA’s collection, is a horizontally long painting of a pair of peacocks. Besides this work of two peacocks perched on the trunk of a pine tree, characterized by the birds’ long, draped feathers, there is also Peacock, which is of a single peacock with his wings fully spread, filling the entire surface of a 4-piece folding screen. Peacocks have beautiful patterns on their wings, but they are by no means easy subject matter, since the artist must portray them delicately, with a fine brush. Without masterly skills in detailed brushwork, the portrayal of peacocks and pine trees is a very challenging task. Jung Chanyoung was up to it, painting the peacocks with exquisite, fine brushwork. The mainstream of Korean traditional painting has been color pigment painting. But because such coloring technique was also characteristic of Japan, Korean public sentiment toward color painting was negative, and the genre was devaluated following liberation. Color pigment painting originated in China, where it can be categorized into the Southern School and the Northern School. Compared to the ink paintings by literary artists of the Southern School, color painting can be seen as belonging to the Northern School. Since color technique was associated with the Northern School style, artists practicing such technique in the Korean peninsula, which was under strong influence from the literary ink painting style, were not highly evaluated. Against this background, it is noteworthy that a skilled color artist such as Jung Chanyoung gained prominence.

Looking at the masterpiece Peacock, we are moved to think again about the tradition of color painting, about Jung’s artistic merit in her elaborate work, and about her inner desire to pursue a new future through the brilliant peacock, despite the dark and gloomy times. The work seems to be asking us to think about what the Peacock means to us, in our life and era today.

이인성, 카이유, 1932

안녕하세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윤범모입니다. 오늘은 이인성 화가가 1932년에 그린
<카이유>라는 작품을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Lee Insung, Kaiyu, 1932

Hello, I am Youn Bummo, the Director of MMCA. Today we will take a look at an artwork called Kaiyu, painted by artist Lee In-sung in 1932.

이인성(1912-1950)은 1920-30년대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입니다. 대구는 1920년대 수채화로 일가를 이룬 서동진(1900-1970) 작가가 활동하였습니다. 서동진의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 종합 미술 상사이자 교육을 담당한 ‘대구미술사’ 문하에서는 이인성, 김용조(1916-1944)와 같은 화가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서동진에 의해 새로운 수채화 세계에 입문한 것이죠. 1920년대 대구 화단은 ‘수채화’라는 독특한 장르로 새로운 미술 언어를 자리 잡게 합니다.

<카이유>라는 작품은 1932년 4월에 제작한 것으로 작품 오른쪽 아래 작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꽃’을 소재로 한 ‘수채화’입니다. 대구 출신의 화가답게 ‘수채화’로 일가를 이룬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1932년이라면 작가 나이 불과 20살이네요. 20세의 어린 나이에 이렇듯 구성, 색채 등 아주 짜임새 있는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이기도 합니다. 17살에 조선미전(조선미술전람회)에 등단했기 때문에 조숙한 천재성을 보인 증거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하얀 칼라꽃 다섯 송이가 뒤에 크게 있고 가운데에는 붉은 장미, 하얀 장미, 커다란 잎이 보입니다. 배경을 생략한 단순한 구성이지만 작가의 기량이 듬뿍 담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크게는 세잔 화풍, 특히 인상주의 화풍과 연결되면서 작가의 아주 희귀한 초기작으로 주목하게 합니다.

Lee In-sung (1912-1950) was an artist who worked mainly in the Daegu region in the 1920s and 30s. Daegu was also the base for artist Seo Dong-jin (1900-1970), who was a renowned watercolor painter in the 1920s. Daegu Art Company, which Seo established to carry out general art sales and art education, produced artists such as Lee In-sung and Kim Yong-jo (1916-1944). Thus, Lee entered the new world of watercolors under the guidance of Seo Dong-jin. And the special genre called watercolors emerged as a new art language on the Daegu art scene during the 1920s.

The work Kaiyu was painted in April 1932, and has the artist’s signature in its lower right corner. Its most noticeable characteristic is that it is a watercolor painting of flowers. It was a significant work by Lee, who went on to make a name for himself with watercolors, befitting a Daegu artist. In 1932, Lee In-sung was just 20 years old. At that young age, he produced this superb work, well organized in composition, colors and other aspects. The work was also an award-winning piece at the Joseon Art Exhibition. His debut at this competitive exhibition at the age of 17 was an early sign of his genius. In the painting, we see five large white calla lilies at the back, with a red rose, a white rose and big leaves at center front. Though it is a simple composition without background, it fully demonstrates the artist’s skill. The overall style can be linked to that of the Impressionists, Cezanne in particular, making us recognize it as a rare example of the artist’s early works.

이 작품은 일본 궁내성(宮內省)에서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근래에 귀국한 이인성 초기 작품의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미술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특별하게 없었습니다. 미술관, 미술학교, 화랑과 같은 제도적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총독부에서 운영한 <조선미술전람회>라는 연례 공모전만이 유일한 발표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신인들은 이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조선미술전람회>가 낳은 단 한 명의 스타 작가를 말한다면 바로 이인성을 들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 무대를 중심으로 작가적 기량을 펼치기 시작했지요. <조선미술전람회>가 추천 작가라는 제도를 신설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이인성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어린 나이, 불과 25세에 추천 작가가 됩니다.

이인성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약 33점에 이르는 작품을 출품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보여주었지요. 1930년대 화단의 주요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향토색론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 대부분은 관학파적 일본인 화가였는데 심사 기준을 제시한 것 중 하나가 ‘조선의 농촌을 그려라’ 농촌을 주목하게 한 기준을 발표합니다. 당시 많은 화가들이 농촌을 소재로 한 풍경화를 많이 제작하게 되지요 이인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적토가 1920-30년대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데 이인성도 자신의 풍경화 속에 붉은 흙, 적토(赤土)를 큰 비중으로 두면서 대구·경북 지방, 신라의 고도 경주 이러한 지역을 사실적인 풍경으로 담았습니다.

This piece is known to have been purchased by the Imperial household of Japan, and it is among the early works of Lee that recently were returned to Korea, after which it became part of the MMCA collection. During the colonial era, there were no particular arenas in which art professionals could work. In the absence of institutions such as art museums, art schools and galleries, the only opportunity for debut was the annual competition called the Joseon Art Exhibition, organiz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This meant that aspiring artists had no choice but to create their works on the basis of the Joseon Art Exhibition. If I were to mention a single star produced by the Joseon Art exhibition it would definitely be Lee In-sung. Lee manifested his artistic skills at this competition from a young age. When the Joseon Art Exhibition inaugurated its “recommended artist” program, Lee was the first to receive its benefits. He became a recommended artist when he was only 25.

He submitted some 33 works to the Exhibition, presenting his unique world of art. Meanwhile, Lee was also at the center of a major debate on the 1930s art scene, known as the “Joseon local color argument.” With the majority of judges for the Joseon Art Exhibition being academic Japanese artists, one of their guidelines for evaluation was that the participants should “paint the rural scenes of Joseon.” Therefore many artists at the time made landscape paintings of rural areas. Lee In-sung was no different. A typical characteristic of works in the 1920-30s was red soil. Lee also composed his landscape paintings showing large proportions of earth, particularly red soil, as he captured scenes in the Daegu and Gyeongbuk regions, and the ancient city of Gyeongju, in realistic landscapes.

조선 향토색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농촌을 목가적,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다, 농촌의 피폐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김복진의 비판론이 대표적이었지요. 이인성은 농촌 풍경을 비롯하여 정물화, 인물화를 아주 사실적으로 다양하게 제작하였는데 수채화 다음으로는 유화로 자기 세계를 일구었지요. 대표작이 대작으로 현재 세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1930년대의 작품 <가을 어느 날>, <가을 어느 날>이라는 작품은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 들판에 나신의 젊은 여성과 소녀가 있는 작품입니다. 옷차림은 여름 옷차림인데 배경은 가을이지요. ‘계절 불일치’한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은 작가가 특정한 어떤 상황을 연출했다고 보여집니다.

대표작으로 <경주의 산곡에서>라는 작품이 있는데 <조선미술전람회>의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죠. 경주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는데 작품을 살펴보면 두 소년이 숲속에 있는 모습입니다. 나이 든 소년은 숲을 개간하는 중 쉬는 모습이고 또 다른 소년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인데 땅에는 기와가 나왔습니다 바로 신라 시대 때 건물지(建物地)였음을 의미하지요. 저 멀리 산 능선에는 첨성대 형태의 일정한 가건물(假建物)이 보입니다. 사실 첨성대는 산 능선 위에 있지 않지요. ‘공간 불일치’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도 작가가 특정 공간을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인성은 경주를 자주 출입하며 신라 문화에 깊이 경도했고 그 주제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망국의 한을 신라에 빗대서 작품을 했다고도 볼 수 있지요.

Those who were critical of the Joseon local color argument, maintained that artists portrayed pastoral, romantic rural life while ignoring the devastating reality, such as Kim Bok-jin. Besides rural landscapes, Lee In-sung also produced diverse and realistic still life paintings and figures. Following watercolors, he went on to cultivate his world of oils. Three representative masterpieces remain today. Among them is One Autumn Day, painted in the 1930s. One Autumn Day depicts a young woman and a girl standing naked in a field of diverse, flourishing plants. Their lack of clothing indicates summer, yet the background scene is that of fall. This seasonal discrepancy seems to have been intentional, aimed at staging a particular situation.

Another representative work is Mountain Valley of Gyeongju, which received the highest award at the Joseon Art Exhibition. It is a realistic portrayal of the Gyeongju landscape, with two boys standing in the woods. The older boy is taking a break from clearing land in the woods; the other carries a baby on his back. Roof tiles protrude from the ground, indicating that this is an ancient building site from the Shilla Dynasty. Along the distant mountain ridge we can see a structure resembling the shape of Cheomseongdae. In reality, that ancient observatory is not located on a mountain ridge. Such characteristics of spatial discrepancy are also thought to be the artist’s intentional staging of a particular space. Lee frequented Gyeongju, and was deeply influenced by the Shilla culture, which he often used as a theme for his work. Perhaps he was using Shilla as a metaphor of his sorrow for the loss of his country.

1944년 일제 강점기 말 대표작이 있습니다. <해당화>라는 제목의 작품인데요 해변 가에 소녀 두 명과 젊은 여성이 서 있는 모습인데 이것도 연출 의식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왜 해변이 있는 들녘에 셋이 모여 있는지 주제와 목적이 확실치 않은 상태의 작품입니다. 이인성은 6.25 전쟁 시 불행하게도경찰의 총기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불과 서른 여덟 살 넘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인성은 20세기 전반부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유화의 세계를 새롭게 개척한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Another masterpiece was painted in 1944, during the last stage of the Japanese occupation. It is titled Sweetbrier. The painting shows two girls and a young woman standing on a beach, and again gives one the feeling of a staged image. The theme and purpose of the work are unclear; we do not know why the three have gathered on this seaside plane. Unfortunately, Lee departed this life early during the Korean War, due to a police shooting accident. He died at the young age of 38. Lee In-sung was the most popular artist of the early 20th century, and one of the pioneers of oil painting in Korea.

최욱경 Choi, 환희, 1977

안녕하세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윤범모입니다. 오늘은 최욱경 작가의 <환희>라는 작품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1977년 작품으로 아주 자유분방한 대작(大作)의 추상 회화가 되겠습니다.

Choi Wook-Kyung, Joy, 1977

Hello, I am Youn Bummo, the Director of MMCA Today, we will take a look at Joy by artist Choi Wookkyung. Painted in 1977, Joy is a free-spirited abstract painting masterpiece.

최욱경은 1970년대 아주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여성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찍이 최욱경은 미국 유학을 통해 당시 미국에서 큰 바람이 불었던 추상표현주의에 입문도 하면서 독자적 세계를 이룹니다. 아주 독특한 세계를 이루게 되는데 최욱경 작품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본다면 먼저, ‘사실적인 구상(具象)적 요소’를 들 수 있습니다. 자화상을 비롯 이러저러한 소재의 사실적 묘사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후기로 갈수록 대부분은 ‘순수 추상 세계’로 들어가게 되지요. 순수 추상도 특징을 보면 일단은 ‘자유분방하다’, ‘기운생동(氣運生動)하다’는 느낌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곡선에 의한 속도감 있는 붓질, 그러면서도 아주 화사한 원색의 묘사, 그런 점이 아주 특징적인데 최욱경은 자유인의 세계를 꿈꾸면서 ‘자유’라는 개념을 화면 가득히 담은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Artist Choi Wookkyung made monumental achievements in the 1970s. She cultivated an independent world of art, partly influenced by her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where she learned about Abstract Expressionism. Let us explore some of the most outstanding characteristics of Choi’s unusual world of art. First, there are the “realistic figurative elements.” While some of her works are realistic portrayals of various subjects, including her self-portraits, the majority of her works, especially in the later period, entered a “world of pure abstraction.” The artist’s pure abstract paintings were also free-spirited, and full of energy and liveliness. She typically used rapid brush strokes forming curves, and brilliant primary colors. I see Choi as an artist who filled the whole picture-plane with the concept of “freedom,” while dreaming about a world of free people.

그러면서도 최욱경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문학성’인데 작가 자신이 시집(詩集)을 출판할 정도로 문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은 최욱경 작품 속에서 시심(詩心), ‘시(詩)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죠. 또 하나는 전통성의 문제인데요. 최욱경 자신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받은 영향 중에는 우리 전통 속 단청이나 민화가 있다’ 단청이나 민화의 특징은 오방색(五色)을 기초로 채색(彩色), 바로 원색(原色)의 향연이 아닙니까. 우리 한국인은 원색을 좋아하는 민족인데요 그러한 오방색에 기초를 둔 최욱경의 채색 의식, 그것도 형식을 파괴하는 자유분방한 필치 속에 담겨 있는 독특한 시심(詩心)의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1970년대 한국 화단을 생각해보면, 단색화 계열이 크게 자리를 잡았지 않습니까. 그 무렵 원색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적 최욱경의 화풍은 아주 두드러진 특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면 세계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침잠된 용광로 달리 표현하면 최욱경 작품 속에서 역동성, 생동감과 같은 특징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죠 최욱경의 시집 중에 이런 시(詩)가 하나 있습니다.

Meanwhile, another aspect we can sense in her work is its “literary” nature. Choi Wookkyung had a strong literary sensibility, as seen in her published book of poetry. Therefore we can read the “spirit of poetry” in her paintings. Another characteristic of her work is its traditionality. Choi once commented, “Among the things that influenced me were Korean traditional dancheong and folk painting.” As you know, dancheong and folk painting are characterized by their feast of primary colors, based on the traditional five cardinal colors (obangsaek). The Korean people have always loved primary colors. Thus, we could say that Choi’s color awareness based on the obangsaek and her free-spirited brushwork that broke the rules of formality were based on her unique world of poetic spirit.

When we think about the Korean art scene of the 1970s, we recall the strong presence of Dansaekhwa (monochrome painting). During that time, Choi’s abstract expressionist style based on primary colors must have stood out conspicuously. As if there were a smelting furnace deep down in the inner world of the artist, dynamic gestures and vitality seem to emanate from Choi’s paintings. The following poem, taken from her book of poetry, is about her name.

최욱경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 1972년 발행인데 그 책에 실린 「나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의 시(詩)입니다. 화가 자신은 말을 잃어버린 <벙어리 아이>로 묘사했고 무지개 꿈을 좇다가 <길을 잃은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생활 굴레 속에서 이름을 잊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 ‘이름 없는 아이’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최욱경 화가의 작품 속에서는 깊은 시(詩) 정신과 함께, 분방한 필치, 화려한 색채를 집약해서 자신만의 역동적인 추상 세계를 이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욱경의 <환희>라는 작품 누가 봐도 이 작품을 보면서 환희심(歡喜心)을 일으킬 것 같은 율동미, 어떤 색에 의한 거침없는 세계, 가식 없는 세계죠.이 작품은 그러한 세계를 읽게 합니다. 춤추는 동작과 같은 경쾌한 리듬이 화면 가득히 담겨 있다고 보여집니다. 참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승을 떠난 최욱경 작가 자유인으로서의 최욱경의 예술. 오늘 우리는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This poem, titled “My Name is,” is from the artist’s book Like Unfamiliar Faces, which was published in 1972. The artist portrayed herself as a “mute child” who had forgotten how to speak, and a “lost child” who got herself lost following her rainbow dreams. She also expressed herself as a “nameless child” who became nameless as she was bridled by daily life. Nevertheless, Choi Wookkyung successfully achieved a unique, dynamic world of abstract art, by integrating brilliant colors with free-spirited brush strokes, based on a profoundly poetic spirit.

Anyone can see in the artist’s work Joy that it is an unhindered world created through rhythmical beauty and colors, an unpretentious world that naturally stirs up feelings of delight. enables us to read such a world. The picture-plane is filled with cheerful rhythm resembling the movements of dancing. I think it is a delightful work of art. Today, we were given the opportunity to think about artist Choi Wookkyung, who one day suddenly left this world; and about the art of Choi Wookkyung, who was a free spi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