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 Various Whites | 아티스트 인터뷰 : 권영우
2017
Client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Project ✍️ Various Whites | 아티스트 인터뷰 : 권영우

국제갤러리
Various Whites
아티스트 인터뷰 : 권영우
2017.3.16-4.30

KUKJE GALLERY
Various Whites
Artist Interview : Kwon Young-Woo
2017.3.16-4.30

작업 소개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된 박찬경의 전시 《안녕 安寧 Farewell》과 권영우의 전시 《Various Whites》를 기념하여 따로 진행한 아티스트 인터뷰 영상으로 ‘동양’을 재료로 한 권영우, 박찬경 두 작가의 작업 중심 세계를 엿볼 수 있다. 2013년 타계한 권영우 화백은 동양화의 캔버스인 화선지 자체를 오리고 찢고 덧대어 그림에 이용하며,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로 유명한 박찬경 작가는 역사와 전통, 현재를 잇는 ‘전통 실재’라는 것을 미디어로 표출한다.

크레딧:

Director : 57STUDIO
Produced, Coordinated by KUKJE GALLERY
Executive Producer : MeeJee Lee
Camera : Um Junho, Jai Chul Yu(Studio Pal)
A. Camera : Kawk Jaemin

2015년의 개인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백색 한지(韓紙) 작품을 주로선보인다. 동양적 재료를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조형언어를 구축한 권영우의 작업의 궤적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그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적 주목을 받는 단색화의 시초가 된 1975년 동경화랑에서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의 제목을 인용한 이번 전시는 권영우가 단색화 작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전환을 보여준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영우는 초기에는수묵으로 작업하며 구상적 추상의 일 막(幕)을 이루었고, 1962년을 전후하여 필묵을 버리고 한지를 작품제작의 주요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동양화 작품에서부터 패널에 한지를 붙여 다양한 조형성을 탐구한70년대 초 작품, 그리고 백색 한지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의 작업 전환의 궤적을 좇는다. 특히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지 작업에서 그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기본 행위를 배제하고, 대신에 주로 손톱이나 직접 제작한 도구를이용하여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행위 등을 통해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와 종이의 물질성과 촉각성을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권영우는 여러 겹으로 겹쳐진 한지로 섬세한 재질감을 강조하면서 종이 위에 만들어진 입체감과리듬으로 조형성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동양화의 매체를 재조명하여 동양화의 영역을 초월한 새로운 문법을 만든 것이라 평가된다.

출처 : 국제갤러리 홈페이지 전시소개글

동양화는 흔히 화선지라고 하는 하얀 종이에다가 먹이나 채색을 가지고, 구체적인 그림이건 다른 어떤 형상을 그리는데, 저는 그거를 그리는 작업이 아니고, 동양화에서 쓰는 화선지라고 하는 종이, 그 매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그림을 그려 왔었습니다.

A conventional oriental painting is about drawing a specific image or a form using Chinese ink or colors on white paper, called hwaseonji or hanji, but I’ve created a painting using hanji as a medium instead of a surface to be pasted on.

미술원 다닐 적에 학교에서 배운 것이, 소위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어떤 전통적인 동양화, 그런 것이 제 체질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가지고 난 내 걸 해야 되겠다 하는 방향으로 자꾸 나가다 보니까, 하얀 종이로 돌아옵니다만, 화선지라고 하는 하얀 종이가 내 주위에 늘 있었고, 그 때는 모든 재료가 귀하고 불편할 때니까. 화판 하나를 내가 만들고 땜질해서 뚫어진 데를 고치고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화선지 갖다 바르고 하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땜질하려고 갖다 붙였던 화선지들이 이루어내는 어떤 그 나름대로의 하모니랄까. 아주 재미난 걸 발견한 거죠. ‘아, 이거 참 재미있다.’ 그게 그 때부터 종이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 거에요.

After realizing that I don’t really belong to traditional oriental painting taught at school, I explored to find my own way only to return to hanji by chance. At the time when all materials are not easy to afford, white paper called hwaseonji was always around me.

Making every single drawing board and repairing it by myself, I sometimes pasted hwaseonji on the holes and soon discovered the harmony of patched hawseonji, which was an unexpected joy. That’s how I began pasting paper.

처음에는 발라 붙이는 작업이었었습니다. 하얀 종이를 어두운 바탕에 한 장 발라놓으면 밑에 색깔이 어리거든요. 두 겹을 붙이면 다시 좀 하얘지고, 안 붙은 데는 더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 층의 차이가 나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고요, 그 다음에는 물 발라가지고 밀어붙이는 작업을 했었지요.

그러면 여기 돌기가 생기고, 약간 입체적인 돌기고. 그 다음에는 종이 여러 겹을 발라가지고, 이건 뚫는 작업을 했었어요. 손가락으로도 뚫고, 나무 꼬챙이를 갖다 깎아가지고 뚫기도 하고, 완전히 평면에서부터 다양하게 나갔었죠.

육십오륙년 경이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때가 내 나름대로 내 경지를 개척했다하는 의미에서 발표를 처음 시도한 것이 신세계 백화점 안에 있는 미술관에서 제 1회 개인전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지금까지 그런 그림의 형태와 다른 종이만 가지고 다루는 그런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그런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만들었었죠. 그때 이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게 동양화냐 별 소리가 다 많았죠.
동시에 소위 말하는 추상적인 것 비구상적인 그런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거는 서양화지 하는 그런 얘기까지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At first, it was about spreading and pasting. If a sheet of white hanji is pasted on a dark background, the color appears through the sheer layer. It gets whiter with more layers while less layers give it a darker color. I start from these different layers. Watered and pushed, paper now has three dimensional bumps. Then I glued more layers of paper
and punctured, using fingers and wooden skewers. I experimented with diverse methods from the completely flat plane.

I remember it was around 1965-6. My first solo show at Shinsegae gallery inside the department store was the first time I attempted to show the public the field I pioneered.
My work was more like “creating” solely with paper than “drawing” on hanji that I had engaged before. Some people questioned its legitimacy as oriental painting and some even called it Western painting
since it was more categorized as so-called abstract or non-figurative art.

일단은 저 나름대로 생각할 적에는 회화지 동양화 서양화 구별을 굳이 두지 말자. 기름 물감으로 그렸건 서양화적인 화법으로 그렸건, 요는 그 작품이 발산하는 어딘가 그 체취가 동양적인 것을 발산할 적에 그것은 동양화다, 저는 일단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It’s all painting in the end. Even though it’s painted in oil paint in western style, if it has an oriental aura, it is an oriental painting. That’s what I think.

우연한 기회랄까요, 국전에 계속 출품을 하다가, 국전에서 물론 특선도 됐고, 또 나중에 심사위원도 했습니다만 초대작가 중에서 선정하는 초대작가 상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거를 74년도에 수상했습니다.
역시 외국에, 그 때는 나간다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었는데, 일단 외국의 어떤 그런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75년에 출국해가지고, 파리에 가서 약 1년 있었습니다.

파리로 가면서 채색을 집어넣기 시작한 거죠. 처음엔 조심스럽게 채색을 화면 뒤에다 발랐습니다. 그럼 이것이 화선지라고 하는 것은, 빨아먹는 성질이 있거든요? 앞으로 빨아 당깁니다. 그러면 겉에다 확 바른 것보다는 은은하게 이것이 젖어 나오죠. 그런 효과를 많이 사용했었죠. 뚫은 데다가 나오게 하기도 하고, 칼로 찢어가지고 그 사이로만 나오게 하고, 그런 변화들을 많이 찾았었죠.

이미 작고하신 이응노 선생님이 그때 나를 데리고, 거기 가서 소개를 했어요. 그랬더니 내가 여기서 해가지고 갔던 작품에다가 거기서 만든 거를 보여줬더니, 깜짝 놀래면서 아주 감탄해 하면서, 자기 화랑에서 전람회를 하자, 그렇게 대번 성사가 됐었어요. 그렇게 전람회를 했었죠. 그리고 거기 10년 있으면서 그 다음에 살롱 드 메, 살롱 그랑에존 오쥬리, 이런 여기로 말하면 미술 대전 같은 전시회가, 거기를 봄 가을로 10년 동 안 계속 쭉 출품을 해왔었어요.

It all happened almost by chance. I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for several years, received special awards, and finally became one of the judges. In 1974, I was awarded the special recognition prize,
which gave me an opportunity to travel abroad and experience various cultures overseas at the time when trip abroad was not easy. Then in 1975, I left for Paris and spent a year there.

I moved to Paris and started adding colors. At first, I colored from the back of the paper very cautiously. Hwaseonji, by its nature, absorbs the colors from the back. It allows the colors to spread more slowly than applying colors directly on the surface. I was seeking for the effects such as colors spreading out of the punctured holes and through the cracks cut and torn by knife.

The artist Lee Ungno introduced me to a private gallery. I showed them the works I had made in and brought from Korea and they were very impressed and suggested me to hold an exhibition at their gallery. That’s how it began. I participated in the Salon de Mai and the Salon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every Spring and Autumn for ten years.

제가 그 종이 작업을 죽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최초의 종이 작업이 라는 것은 종이에다가 물감도 아무것도 안 들이고 종이를 발라 붙인 것 같은 하얀 그림 이었었죠.
서양 그림이라는 것은 기름 치고, 채색이 진하고,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그런데 비해서 완전히 다른 거죠. 아무래도 이색적인 거니까요.
그 중에서 조금 동양적인 것을 관심이 있고 그런 분들이 어딘가 선 적인 것을 느낀다, 하는 얘기가 굉장히 저한테는 들어왔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그 선, 고요하고 정적인, 그 사색적인,그 사람들은 거기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의 작품에 대해서 지적해준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니었었던 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Although I keep talking about the use of paper, my very first paper work began with a white hanji works, where paper with no color were pasted in layers.
It was very unusual and different from Western painting that uses oil and has strong colors and contrast.
People who are interested in Orientalism have told me that they feel something virtuous in my work. I guess people might have felt Zen, a state of calmness and peace in Buddhism, in them.

출발점에서부터 언제가 귀착점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하는 일에서 늘 거 기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는 것, 늘 꾸준히 한다는 것, 계속 한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I don’t know when and where the end point will be, but what I am doing is to take one step forward from the status quo, steadily and continuously.